본문 바로가기

짧게 쓰기/연습장

스트레스 청정 팀을 기념하다.

내 구체적인 날짜까지도 기억한다. 2010년 8월 21,22일 주말은 그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불편했다. 마치 찜질방 안이 더워서 밖으로 나오고 싶은데 밖으로 나오지 못한 상황과 비슷했다. 너무 덥고 습하고 불쾌했다. 그때의 더움은 그 불쾌함과 불편함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캐나다의 더운 날씨는 신기했다. 온도가 30도로 덥고 따갑기는 한데, 잠바를 입어도 되고 벗어도 됐다. 너무 신기했다. 날씨가 참으로 깔끔했다. 고온건조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처음느껴보는 이런 더운 날씨가 상쾌하고 날씨는 밝으니 기분도 좋아졌다. 캐나다의 더운날씨는 그때만 덥고 그늘진 곳에 가면 금방 시원해졌다.

옛날에 스트레스를 어떻게 하면 들 받을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상황이 충분히 스트레스 받을 환경이었고.. 그 스트레스 때문에 몸도 망가지는 경험도 한 것 같다. 그런데 어느순간 무릎을 딱 치며 깨달았다. 일 스트레스와 사람 스트레스는 그 독성이 차원이 틀리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옛날에 주로 받은 스트레스는 사람 스트레스 였다. 사람 스트레스는 마치 2010년 8월21,22일의 찜질방 고온다습 더위와 비슷하다. 그 답답한 불쾌함과 칼로 치부를 도려내는 비참함이 깊고도 넒었다. 불쾌함, 비참함, 비굴함, 온갖 나쁜 단어를 붙여도 맞아들어갔다. 무엇보다 사람스트레스는 그 아열대성 날씨처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바로 전에 일한 곳에서 주로 받은 스트레스는 일 스트레스 였다. 전에 일했던 곳이 일 스트레스는 최고였다. 당시 업체 사장님이 편하게 일하고 칼퇴근 하는 SM프로젝트라고 해서 갔더니만..갓 SI가 끝난 사이트를 인수인계받아 SM프로젝트 임에도 불구하고 초기 4개월은 매일 9시 10시에 퇴근하며 안정화 시키는데 노력해야 했다. 더구나 그 사이트는 좋은 프레임워크로 잘 정리된 구조가 아니라 업무가 많이 복잡해서 덕지덕지 소스가 엉키고 섥히고 소스가 여러곳에 중복되는 등..응집도는 바닥이고 결합도는 최고로 높은 일하기 괴로운 곳이었다. 무엇보다 내가 주력해서 노력하고 있는 객체지향 기술이나 자바 프레임워크 기술 애자일 관련 기술을 전혀 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만두기전 2주간은 팀장님이 한달짜리 일을 처리하라고 던져주어서 엄청 투덜거리면서 막판까지 고생했다. 어떻게 한달짜리 일을 2주만에 하라고 하면서 나 떠날때까지 부려먹는구나 싶어 정말 많이 투덜거렸다.

그러나 지금 그때 일 스트레스 받은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무리 일이 힘들어도 퇴근하면 바로 잊혀졌다. 그런데 사람스트레스 심하게 받은 더 옛날은 아직도 남아 나를 괴롭힌다. 정말이지 일 스트레스는 캐나다의 더운 날씨처럼 그때만 힘들지만 깔끔하게 잊혀지고.. 사람 스트레스는 그 끈적이는 불쾌함이 참으로 오래 갔다.

바로 전에 일터가 일 스트레스는 심했음에도 즐거웠던 기억으로 남았던 것은 유독 팀원들하고 화목하게 지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여기서 사람스트레스는 거의 받지 않았다.


당시 우리팀의 팀장님은 여성 차장분이었다. 여장부, 깐깐한 여자 교감 선생님 같은 분이었다. 여성으로서 시중은행 차장 자리에 괜히 오르신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차장님은 카리스마가 있으셨고 일도 꼼꼼하게 처리 하셨고 해당 업무에 누구보다 정통한 분이셨다. 그러나 사실은.. 가끔 어쩔수 없이 악역도 맞기 때문에 그 자리에 오르셨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내가 이 차장님을 좋은 분으로 기억하는 이유는 신기하게 나를 무척 예뻐하셨기 때문이었다. 이 나이에 민망하지만 예뻐한다~ 라는 단어가 어울릴정도로 차장님은 나를 예뻐해주셨다. 누구나 학생때 무서운 선생님이 다른 학생은 엄하게 대하지만 나만은 예뻐했던 특별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무척 고마웠다. 내가 기대를 저버리고 빨리 그만둘때도 차장님은 칭찬을 많이 해주셨고 자신감도 많이 심어주셨다. 내가 뭔가 얘기를 하려고 하면 환하게 웃으면서 나를 좋게 보셨던 이모님같은 차장님의 모습이 가끔 떠오른다.

두명의 40대 차장님은 프리랜서 고급 분이셨다. 나는 이분들을 내가 40대 개발자가 되었을때의 롤 모델로 삼고 싶었다. 어떤 이미지이셨냐면 지적이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분들이었다. 거외 개발자라면 후줄근한 복장에 컴퓨터 밖에 모르는 인상일수도 있지만 이 분들은 세상 돌아가는 정치나 경제나 다양한 상식에 박학 다식하여 식사시간에 얘기를 들어보면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개발자의 이미지를 한단계 높인 분이었다. 프리 개발자지만 신의 직장..은행 직원과 얘기할때도 꿀림이 없었다. 더구나 두분은 일상에 찌든 셀러리맨이 아니라 꽤 풍요로운 생활을 즐기고 계셨다. 주말이면 여기저기 여행다니면서 풍요로운 생활을 즐겼다. 나도 40대 개발자가 되면 이 분들 처럼 살아야겠다라고 생각했다.

나랑 또래 프리 여직원 두명이 있었다. 이 두 여직원은 예전에 따로 블로그에 포스팅 한적도 있다. 한명은 나랑 동갑으로 전형적인 한국의 똑순이 여성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마치 누나 같은 자상한 친구로 기억에 남았다. 자상하고 똑똑하고 참 예쁜 똑순이다. 한명은 내가 아는 여자 개발자 중에 가장 잘 꾸미고 여성스런 개발자였다. 키도 늘씬하고 예쁘장하고 집도 비슷하여 꽤 친하게 지냈다. 나는 이 여직원 둘 덕분에 정서적인 안정? 을 찾았다고 할까..고마운 친구들 이었다.

누구나 어디서나 나랑 맞지 않은 팀원이 있을텐대 사실 여기서도 티격태격한 팀원이 있었다. 40대 고급 프리랜서 분이셨는데 사실 나랑 티격태격 했다는 사실만 빼면 위의 두명의 차장님과 똑같을 정도로 역시 박학다식 하고 풍요로운 생활을 하시는 분이셨다. 그런데 나랑 업무가 겹치는 바람에 종종 의견충돌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이분에 대한 나쁜 기억이 사라진 이유는 나랑 경력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더라도 나를 동등한 위치의 개발자로 존중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 점만큼은 참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이 두분은 내가 평생 기억하고 싶을 정도로 내가 좋아하고 천사같은 분이다. 한분은 프리인 나를 직속 관리하는 전산부 대리님이셨고 한분은 우리가 관리하는 시스템을 실제로 사용하는 업무팀의 차장님이었다. 전산부 대리님이 을이라면 업무팀 차장님은 갑이라고 할까..그런데 내가 프로젝트 경력을 쌓으며 이렇게 천사와도 같은 갑은 처음 만나뵈었다.

전산부 대리님은 형처럼 나에게 이것저것 조언 해주시면서도 김대리님 김대리님 하며 업무할때는 존중해주고 실수해도 잘 봐주시고 세상에 이런 천사같은 상사가 있나 싶을정도로 잘해주셨다. 또 한분은 사이트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끝까지 인내하며 개발자를 믿어주고 개발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보기드문 업무담당자 갑이었다. 뭐 어떻게 표현하기가 어렵다 이 두분들은 정말이지 다시는 만나기 어려울것 같은 천사 중에 천사 '갑' 이었다.


[으레 '갑'은 고압적이고 강압적이며 권위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이분들은 그런 상식을 완전히 깬 정말이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분들이다. 이 좋은 분들 덕분에 나는 사람 스트레스 거의 없는 생활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건강하고 즐거운 직장생활을 짧게나마 했다. 나도 평범하면서 좋은 직원들과 함께 있으면 스트레스들 받고 사회생활 잘 할수 있을것 같다.]



이전까지 직장생활 하면서 나는 사람 스트레스와 일 스트레스의 차이점을 알았고 좋은 사람들도 알고 어울리게 되었다. 곧 출근한 팀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아마도 이전 팀원들과 비슷한 분들것이다. 사실 전 팀원들같이 평범한 동료들만 만날수 있다면 나는 일이 힘들어도 긍정적으로 일할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마지막에 언급한 천사 갑 두분은 다시 보기 어려운 분들 같다. 가진 사람이 겸손하기가 참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치 싱글 벙글 개발자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동료애처럼 기념으로 포스팅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