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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연습장

청양고추, 엉뚱한 실험 결과

점심을 먹은 나는 잠깐의 기분좋은 나른함을 느낀다. 그러나 나는 서서히 조여오는 내 몸의 변화를 안다. 내 몸은 곧 늪속에 빠질 것이고, 물속에서 첨벙질 하겠지만, 아무리 애써도 그 상황을 쉽게 헤어나오지 못할것이다. 역시나 눈과 머리가 통제를 잃어간다. 키보드위에 놓인 손에 힘이 풀린다. 이 상황을 나는 분명히 인식하지만 헤어나오기는 힘들다. 결국 꾸벅 꾸벅 머리가 흔들린다. 혼이 뺏기는 느낌이다. 점심을 먹고 1시에서 2시 사이 나는 몰려오는 낮잠을 이겨내기는 몇십킬로 역기 드는것 보다도 많은 힘을 필요로 한다.

일과중에 점심 먹고 조는 행동은 다른 팀원이 보기에 좋은 행동도 아니고, 어쩔수 없이 졸고 나면 머리가 띵하니 기분도 좋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어떻하면 묵직하게 덮쳐오는 낮잠을 물리칠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곤 한다. 오늘 팀원이랑 순대국을 먹던중에 팀원이 청양고추를 먹더니 너무 매워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때 문득 깨달았다. 있다가 오후에 졸릴때 청양고추 한조각 먹어보면 어떨까. 그 강도높은 매운 자극에 온몸이 정신 번쩍들어서 낮잠을 이겨내고 개운하게 일할수 있을것 같았다.

식사가 끝나고 청양고추 두조각을 챙겨왔다. 아니나 다를까 나른해졌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청양고추 한조각을 먹었다. 가슴에 경직된 느낌이 왔다. 온몸의 신경에 전기충격이 잠깐 가해지는듯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 정신은 나른한 상태 그대로였다. 다시 정리하면 내 몸은 잔뜩 경직된 반면에 정신은 여전히 나른한 상태였다. 한시간쯤 뒤에 몸의 경직은 많이 풀렸지만 가슴 한가운데 청양고추가 남긴 잔상이 계속 남았다. 입가에는 청양고추 특유의 맵고 쓴 향이 남았다. 한마디로 잠은 잠대로 오고 몸은 몸대로 불쾌했다.

더구나 낮잠 쫓으려고 청양고추 조각을 챙겨왔다는 사실을 팀원들이 알면서 나를 무척 어이없어 했다. 청양고추를 챙겨올때만 해도 나는 나의 가설이 참 그럴듯 하다고 생각했는데 제3자가 보기에도 이건 아니었나보다. 나는 몇년에 한번씩 아무나 하지 않는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청양고추 실험 결과와 팀원들의 반응을 보니 내가 엉뚱했다는 것을 절감했다.

퇴근할때 청양고추 잔상을 없애고 싶어 팀원인 형에게 저녁 쏜다고 하고 통닭을 먹었다. 느끼한것이 먹고 싶었다. 기름기로 청양고추의 잔상을 고압살수 하고 싶었다. 느끼한 통닭을 먹었더니 청양고추에 엉망이 된 내 몸이 원기회복되는 것 같았다.

청양고추 조각 때문에 오후일과를 어이없게 보내고, 요즘 돈 좀 바짝 아껴야 되는데 통닭 쏘느라 돈도 쓰고 참 엉뚱하게 보낸 하루였다.

이 얘기는 술먹고 대충 쓴 편인데, 이 얘기를 잘 정리해서 컬투쇼에 올리면 얼추 뽑힐것 같기도 하다. 조만간 재밌게 정리해서 컬투쇼 한번 올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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