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짧게 쓰기/리뷰

MC스나이퍼 4집 (한국적 표현의 자유를 펼쳐보이는 글쟁이)

MC란 랩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앞에 ‘자신이 작사한 랩’ 이라는 단서가 꼭 붙어야 한다. 이 단서를 붙이면 MC는 ‘자신이 작사한 랩을 부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이 ‘랩퍼’라고 폼 잡았던 일부 가수들은 MC라는 호칭을 가져다 쓸 수가 없다. 그들은 자신들이 의존하는 기획사에서 만들어준 가사를 가지고, 댄스 음악 중간의 쉬는 부분에 갑자기 불쑥 뛰쳐나와 과장만 랩만 잠깐 지껄였다가 다시 들어가는 엉터리 랩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MC는 자신의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자신만의 단어와 자신만의 음률로 ‘프리스타일’ 랩을 펼친다. 영화 8마일을 보면 심지어 정해진 가사 없이 즉흥적인 생각으로 랩을 펼치기도 하는데 그 순발력과 재치가 천재 시인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놀라웠다. MC는 이렇게 자신만의 생각이 있어야 하고 그 생각을 재치 있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

MC들은 자신들을 표현할 때 ‘입으로 글을 쓴다’, ‘글로 그림을 그린다’, ‘나는 글쟁이’ 라는 표현을 쓴다. 자기만의 뚜렷한 생각을 감칠 맛 나는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해야 하는 랩 가사와, 글을 쓰는 것이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남이 만들어준 가사로 입만 방긋대는 ‘랩퍼’라고 말하는 일부 수명 짧은 가수들을 제외한, 자신만의 생각을 가사로 담아 표현하는 진정한 MC들이야 말로 '멋진 글쟁이'라고 생각한다.

MC스나이퍼도 멋진 MC중 한 명 이라고 생각한다. MC스나이퍼가 내가 힙합을 받아 들일 때의 괴리감을 어느 정도 없애주었다. 나 같은 경우 MC나 B-Boy같은 담백하고 깔끔하고 역동적인 힙합의 기술적 요소는 무척 좋아하는데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영어를 남발해야 하고, 너무 미국스러운 옷을 입어야 되는 등의 이질적인 미국문화는 나에게 와 닿지 않았다. 힙합 기술은 담백하고 깔끔하고 역동적인데, 부수적으로 다가오는 미국 문화는 이질적이다. 편하게 받아들이는 좋은 방법 없을까?

MC스나이퍼가 그 길을 제시해주었다. MC스나이퍼는 미국 힙합문화와 우리나라 고유 문화를 나름대로 융합하여 한국적인 힙합을 창조했다. 나는 이것을 미국 힙합문화의 좋은 요소만 추출하여 우리 입맛에 맞는 새로운 작은 문화를 창조했기 때문에 힙합의 매쉬업(IT용어인 매쉬업은 OpenAPI로 접근 가능한 서비스와 자신의 데이터와 기능을 믹스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웹2.0 개념입니다.)이라고 생각해보았다. 1집에서 민중가요를 리메이크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부터 2집 ‘한국인’ 등 MC스나이퍼는 담백한 한국적 힙합을 추구 했다고 생각한다.

그 예로 MC스나이퍼는 랩에 영어를 거의 쓰지 않는다. 이번 4집에서 특히 MC스나이퍼의 랩은 다른 MC들처럼 특정 대상을 무조건 비판하거나, 영어를 모국어처럼 쓰는 것이 아닌, 마치 한국 소설가가 옛날 소설을 쓰는 것처럼 담백하고, 토속적이고, 생각을 필요로 하는 단어들을 쓴다.

‘우리 집’ : 가난하지만 소박한 가정 환경,
‘고려장’ : 독거노인들의 고난,
‘Where Am I’ :자신의 힘들었던 가난한 음악환경,
‘모 의 태’, ‘문을 열어 문으로’ : 세상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

등처럼 우리 세상의 가난하지만 소박한 요소와 세상의 철학적인 요소를 멋지게 담고 있다.

이번 발전된 MC스나이퍼 4집을 통해 나는 영어를 거의 쓰지 않고, 무조건 특정 대상을 비판하지 않으면서, 우리나라의 감칠맛 나는 단어와 문장만으로 우리의 가난하지만 소박한 요소들과 세상에 대해 철학적인 고찰을, 마치 칼럼니스트처럼 펼쳐 보이는 MC스나이퍼가 정말 글 잘 쓰는 글쟁이 같아서 친근감이 많이 갔고, 나에게 힙합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길을 알려주어서 무척 고마웠다.

나는 개인적으로 가난하지만 소박한 가정 환경을 노래한 ‘우리 집’과, 자신의 음악 생활의 고난을 처절하게 담은 ‘Where Am I’를 강력 추천 한다.

MC Sniper (엠씨 스나이퍼) 4집 - How Bad Do U Want It
MC 스나이퍼 (MC Sniper) 노래/포니캐년(Pony Cany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