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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리뷰

적립금 5만원, 내 가난한 손바닥의 새로운 가치

온라인 서점에서 이주의 리뷰에 뽑혔다고 적립금 5만원을 줬다. 기분이 좋았다. 공식적으로 내가 글을 못쓰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정받았거든. 나는 자랑하고 싶어졌다. 직장 동료들에게 자랑하기는 그렇고 친한 친구와 친동생과 후배 등한테 자랑했다. 반응이 놀라는 것 같기도 하고 시큰둥 한 것 같기도 했다. 상관없이 나는 기분이 좋았다. 내가 창조해낸 것들이 인정받았다는 것은 정말 뿌듯한 일이기 때문이지.

적립금 5만원으로 나를 위한 책과 아이들용 책을 샀다. 어둠속의 미지의 영역에서 무한한 능력을 이끌어준 김훈선생의 책을 또 샀다. 잠깐 읽어봤는데 역시 김훈선생의 문장은 신동엽의 재치, 구글의 천문학적 가치처럼 정말 대단했다. 아이들용 책은 직장 상사 분의 아이들과 사촌형 조카에게 줄려고 샀다. 그런데 조카에게 줄 책은 어린이날 전에 제때 전하지 못했다. 어린이날 전날 회사 일하다가 빵구를 냈기 때문이다. 밤늦게 들어갔지. 나는 잠시 무능한 삼촌이 되었다.

적립금은 자부심을 가져다 주고 나에 대한 재 투자와 다정한 삼촌이 되게 해주었다. 그런데 이런 물질적이고 명예적인 것보다 글에게서 나는 더 깊은 무엇인가를 얻었다. 내 가난한 손바닥의 새로운 가치를 얻었다.

‘남한산성을 읽고’란 글은 내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가치관이 그 글 하나에 적어도 내가 볼 때는 놀랍도록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나는 심드렁하게 글을 쓰고 다시 읽어봤을 때 정말 놀랐다. 옛날에 그토록 정리할려고 해도 안되었던 가치관이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쓰다보니 나도 모르게 정리가 된 것이지. 멋진 교관이 위엄있는 목소리로 무질서한 훈련병을 깔끔하게 열과 오를 맞추듯이 나의 가치관이 정렬된 글을 보고 나는 무척 놀랐고 기분 좋았다.

남한산성의 잔인한 상황은 지금도 계속되는 우리 인생, 전쟁터 같은 인생을 살기 위해서 나는 강해져야 한다. 그런데 ‘글쓴자의 무력함’을 가진자는 나를 말한다. 나는 글쓴자의 무력함을 가지고 있다. 서날쇠는 굳세고 강하며 소박한 삶을 살고있는 장인으로 내가 꿈꾸는 이상향이다. 강경한 김상헌, 부드러운 최명길은 내가 기대하는 지도자 상이다.

군대에서 하사 생활할 때 서날쇠 상사님이 계셨다. 무더운 한 여름 비탈길 제초 작업과 한겨울 끊임없이 내리는 눈 치우는 사역, 덩치 큰 쇳덩어리 장비의 하기 싫은 정비 작업들을 서날쇠 상사님은 항상 먼저 나셔서 하셨다. 나도 처음엔 그럴듯하게 서날쇠 상사님을 따라하는척 했다. 나는 이쁘게 쓰여진 글처럼 착하고 성실해 보였지만 힘든 상황에 닥치면 무너지곤 했어. 서날쇠 상사님은 처음에 나를 귀여워하다가 이런 나를 안타까워하며 끊임없이 쓰디쓴 조언을 하셨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지. 나는 고치기 힘든 글쓴자의 무력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서날쇠 상사님의 쓰디 쓴 조언으로 나는 적어도 무엇을 고쳐야 될 지는 알고 제대 한 것 같다.

그 후 나는 글쓴자의 무력함과 서날쇠 상사님의 헌신을 따라하고 싶어하는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갈등했다. 작년에는 특히 심해서 생각만 많고 조리 있게 정리 못하고 실천 못하는 사춘기 아이 같은 혼란 때문에 얼굴에 그늘이 많이 갔다.

그러나 어느날부터 희미하게 알게 된 글쓰기로부터 시작해 세상과 사물을 보는 가치관이 깔끔하게 정렬된 글을 쓴 지금, 나는 적어도 복잡한 생각을 열과 오를 맞춰 깔끔하게 정렬할 수 있게 된 새로운 가치를 창출 한 것이 기분이 좋았다.

세상에 피해만 주는 ‘글쓴자의 무력함’을 가진 사람들과는 다르게, 보이지 않게 우리나라를 이끌어 주는 ‘병자호란때의 서날쇠와 격오지에서 나라 위해 헌신 하시는 서날쇠 상사님과 미래의 서날쇠가 될 나’를 위해 ‘김상헌’, ‘최명길’ 같은 지도자가 ‘전쟁터 같은 이 땅’을 잘 개척했으면 좋겠다. 이것이 ‘내가 세상과 사람을 보는 정렬된 가치관’ 이다.

* 남한산성을 읽고 (건조한 문장 속의 처절함)
* 제목하고 문장은 개:가난한 내 발바닥의 기록을 따라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