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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연습장

동원훈련 4년차, 생각나는 여군교관

나는 육군이 아닌 곳 에서 하사 제대를 했다. 그렇다면 일단 지정된 한 부대에서만 거의 훈련 받아야 되고, 하사 이상 간부는 동원훈련을 7년이나 받아야 한다. 으~7년이나 받는다는 것은 나름대로 고역이었다.

동원1년차, 어렵게 취직을 하고 정신 없던 신입사원 때 훈련소집증이 떨어졌다. 드디에 올게 왔구나 싶었지만 오랜만에 군복을 입는다는게 오히려 설레기도 했다. 4년 동안의 길고 지루한 군생활이었지만 나름대로 그때의 향수도 간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오랜만에 군복을 입었는데 몹시 어색했다. 도착한 부대의 풍경을 보며 입소를 기다리는 것은 몹시 지루했다. 이 기다림부터 예비군훈련이 몹시 지루함을 의미하는 것 같다. 예비군 훈련이 힘들다는 것은 지루해서 힘들다는 게 맞는 것 같다. 건조하고 더운 날씨처럼 2박3일이 언제 가나 싶었다.

더운 날씨와 무거운 군장에 지친 몸을 끌고 화생방 교육장으로 갔다. 경험 많은 교관님은 지치고 짜증나는 예비군 아저씨들 마음을 달래주면서 재미있게 강의해주셨다. 시범 차례가 왔는데 어색한 모습이 보였다. 키 작고 얼굴 하얗고 머리를 묶은 귀여운 군인이 서있는 것이다. 헉~ 여군이었다.

순간 상황이 더 재미 있어졌다 이 작고 귀여운 여군 하사는 자기보다 훨씬 나이 많고 투덜거리기만 하는 아저씨들을 상대로 조교 노릇을 해야 되는 것이다. ‘저 여군이 어떻게 이 아저씨들을 통제하지? 재밌겠다~’ 싶었는데 그 여군은 여린 목소리로 다부지게 소리쳐 가면서 성실하게 잘만 가르친다. 예비군 아저씨들은 저 작은 여군의 귀여움과 성실함 때문인지 웃으면서 고분고분 잘 따라주었다. 그때의 모습은 작고 귀엽고 성실한 여학생 같은 이미지였다.

동원2년차, 훈련소집증을 받고 작년의 숨이 턱턱 막히는 지루함이 떠올라 투덜거리며 짐을 꾸렸다. 동기와 부대로 가는 길부터 지루했다. 역시 날씨도 더웠다. 군대 하면 무조건 지루하고 무더운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은 겨울에 감기가 찾아오는 것처럼 어쩔 수가 없다.

화생방 훈련을 받으면서 그때 작은 여군이 생각났다. ‘올해도 있을까~’ 헉~올해는 조교가 아니라 아예 교관이었다. 이 작은 교관이 나이 많고 투덜거리는 예비군 아저씨들을 혼자서 어떻게 통제하나 싶었는데, 말을 조리 있게 잘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말하는 모습에서 나름대로 위엄이 풍겨 나온다. 올해는 작년의 이미지하고 많이 달랐다. 작고 귀엽고 얼굴 하얀 것은 변함이 없는데 당찬 직장인의 모습이 우러나왔다. 이 작지만 당찬 교관은 우리 보고 방독면 쓰고 가스실에 들어갔다 와야 한다고 까지 한다. 예비군 아저씨들이 투덜거리지만 작지만 당찬 교관은 사정없이 우리를 가스실로 내보냈다. 나는 혼자서 이런 말도 안 되는 지시를 하는 그녀가 대단했다.

으~ 생각하지 못한 가스를 마시고 지쳐서 쉬고 있는데 이 작지만 당찬 교관하고 눈이 마주친 것 같다. 같은 하사 계급장을 달아서 그런지 그녀가 나한테 호기심을 갖고 다가오는 것 같다. 나는 수줍어서 다시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나는 그녀에게 분명히 선배였지만 이쁘장하고 멋지기까지 한 그녀 앞에서 수줍었다. 그녀는 나한테 다가오는 듯 하다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결국 자리를 옮겼다. 이 모습을 본 동기가 옆에서 장난을 친다. “으구~ 얼굴 빨개져갔고, 저 여군한테 반했구만~”

동원 3년차, 무덤덤하게 짐을 꾸리고 역시 같은 부대로 왔다. 8년전 신임하사로 처음 온 곳이 이곳이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부대 정문은 변함이 없고, 2박 3일이 지루할 것 역시 변함이 없을 것 이었다.

올해도 그녀가 있을까 했는데, 우와~ 올해도 화생방 교육장에 그녀가 있다. 순간 반가웠다. 매년 같이 훈련 받는 동기가 옆에서 또 그런다. “너 얼굴 또 빨개졌어~올해는 말 한번 걸어봐~” 하지만 대하기 어려웠던 그녀는 작년보다도 더 발전되어 있었다. 이제는 당차다는 젊은 이미지 보다는 연륜 쌓인 여선생님 같았다. 그리고 조금 통통해진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여전히 작고 귀엽고 얼굴이 하얗다. 이 연륜 쌓인 여선생님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예비군 아저씨들을 통제한다. ‘이제 저 친구도 짬이 많이 쌓였구나~ 오히려 예비군들보다 짬이 많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옷차림이 신기했다. 보통 우리나라 군복은 상의를 바지 안으로 넣어 입는데 그녀는 미군처럼 상의를 빼서 입고 있었다. ’와~ 멋있다~ 요즘 여군 복장은 저렇게 입기도 하는군~’ 하면서 강의를 듣는 중 의례 하듯이 신경 해독 작용제 인가 그 주사를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그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 신경 해독 작용제가 아기한테 안 좋다는데 그래도 해볼께요~^^” 순간 식스센스, 유주얼서스펙트 같은 충격의 반전 영화처럼 머릿속에 재구성되는 수많은 생각들~

통통해진 그녀, 바지 밖으로 내어진 상의, 그리고 지금의 말, 그렇다. 그녀는 임신 중이었던 것이다. 통통해진 몸은 임신이라 그렇고, 밖으로 내어진 상의는 임신한 여군만을 위한 따로 지급된 상의였던 것이다.

와~ 순간 당황했지만 이제는 얼굴 안 빨개지고 편하게 훈련을 받을 수 있겠다 싶었다. 곧 엄마가 될 그녀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어리지만 성실한 여학생 이미지에서 다정한 엄마 이미지까지 참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는게 보기 좋다. 그리고 저 아기 아빠는 분명히 멋진 선배이거나 장교이겠지, 참 보기 좋다.’

엄마가 될 연륜 있는 교관은 이번을 마지막으로 전속을 간다고 한다. 어딜 가든 성실하고 당차고 연륜 있게 잘 살 것이라 생각하였다.

동원4년차, 다음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또다시 훈련을 간다. 이번에는 다른 부대로 간다. 이번 부대에서도 지루하고 무더운 훈련 중에 시원한 콜라 한잔 마시듯 재미있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