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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연습장

노조 투쟁 경험자로서 바라본 이랜드 사태

비어있는 사무실 벽마다 빨간 대자보로 채워졌다. 무덥고 습한 날씨는 빨간 대자보가 녹아 흘러내릴것 같았고, 빨간 대자보속의 구호는 허탈한 우리 직원들의 마음처럼 공허해 보였으며, 빨간 대자보속에 갇힌 우리는 닥쳐올 결과에 근심하며 하루하루를 겨우 살고 있었다.

천하는 하루만에 바뀌었다. 10명이 안되는 용역이 지키던 회사는 몇십명의 깡패 용역을 모셔온 적들에게 점령당하였다. 용역들은 회사문을 용접하고 직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깡패 용역이 사무실의 주인이 되었고 사무실의 주인이었던 직원들은 용역의 위협앞에 참담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방법은 성공했으므로 훌륭했다. 과정이야 어쨌든 적들은 성공적으로 회사를 장악했고, 그래서 승리했다. 그들이 승리했으므로 그들이 버린 윤리적 비용은 버릴만 했을 것이고, 가끔 그들은 그때 그렇게 하길 잘했다고 자축하며 술자리에서 감히 자기들에게 도전했던 힘없는 직원들을 비웃고 있을것이다. 당연하다. 사회는 옛날을 회상하며 감상적인 글을 쓰는 나같은 약자의 편이 아니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승리한 강자의 편이기 때문이다.

나는 IT개발자로 일하면서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경험을 했는데, 탄탄한 회사에 외부와 내부의 침입자가 생겨서 회사가 넘어가게 생겼고, 그때 노조를 결성하여 빨간 대자보도 붙이고, 옷에 리본도 붙이고, 빨간 띠도 매고, 집회도 참석하고, 법적 싸움을 위해 진술서도 써보고, 투쟁~도 외쳐서 싸워봤으나 사회는 승자의 편이라 결국 그들이 다 가져갔고, 진 사람들은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래서 이랜드 사태가 벌어졌을때 회사에서 용역을 동원하고 문을 용접하는등의 기사를 읽고나서,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가 겪었던 일이라 똑같이 반복되는 전쟁에 어이없었고, 지켜보기 안타까웠다.

지금 이랜드 사태는 7월 1일부터 실행되는 비정규직보호법이 진원지가 됐다고 한다. 비정규직보호법에 따르면 2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의 경우 무조건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고, 동일 업무에 한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한 임금차별을 못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원이 2년이 되기전에 해고를 하거나 아웃소싱 회사에 위탁하는 식으로 처리하여, 손해막심한 법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할것이다.

이런 비정규직보호법의 허점때문에 이랜드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계약기간이 만료된 비정규직 350여명을 집단 해고 했고, 이에 반발한 직원들이 매장을 점거하며 강경 투쟁을 시작하면서 사태가 발생되었고 글을 쓰는 7월 19일에는 모든 협상이 결렬되어 공권력 투입이 임박되었다.

내가 보는 이 사태의 첫번째 문제는 엉성한 법이 문제다. 모든 불상사를 막기 위한 첫번째 방법은 잘 짜여진 시스템이다. 개발자로 따지면 짤짜여진 스프링이나 JUnit같은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개발을 진행하면 개발의 고수나 하수의 차이를 줄여가며 골고루 개발을 진행할수 있을 것이고, '진정한 리더는 만능해결사가 아니라 리더 자신이 없어도 조직이 잘 돌아갈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사람이다.' 라는 가르침이 있듯이, 시스템이 잘짜여져 있어야지만 윤리적인 사람/조직, 비윤리적인 사람/조직의 차이를 줄여가며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갈수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보호법은 내가 볼때 중학생도 충분히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는 법인데, 이윤추구에 혈안이 되어있는 똑똑한 기업이라면 당연히 해고하는 방법을 쓸것이라고 본다. 머릿속에 잠깐 그려봐도 도출되는 시뮬레이션인데 법을 만든 정부는 '발이 간지러운데 신발만 긁어주듯' 무책임 했다.

두번째 문제는 윤리경영을 실천하는 듯 하면서도 실제로는 이윤추구에 혈안이 되어 비윤리경영에 앞장서는 회사이다. 저 회사는 기독교적인 기본 윤리에 충실할려는 회사인것 같은데, 그렇기때문에 위험하다. 자신들이 기독교에 입각하여 절대 윤리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못된 짓을 하는 그 와중에도 자신은 절대로 선한 행동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윤리적인 짓을 하는 그 시점에도 자신이 절대 선한 행동을 한다고 보기 때문에 일이 더 커졌다. 자신이 여전히 절대 선하다고 생각하는 지금에도 이미 물질적, 브랜드적 타격은 저 회사를 위협하고 있다.

정리해보니 치밀하지 못한 법을 만든 정부로부터 출발하여, 비윤리적인 회사에 자연스럽게 동기를 부여하게 되었다.

나도 겪어 봤는데
약자의 투쟁은 자신이 약자라고 느끼기 때문에 서글프고 결과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두렵다. 그래도 이것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하는 생존의 싸움이다. 그래서 서민이 어쩔수 없이 생존의 싸움을 하지 않아도 될만큼 직원은 위만 바라보지 않고 부지런한 자기계발을, 기업은 10년을 내다보는 윤리경영을, 정부는 잘짜여진 시스템 구축에 심혈을 기울여야 겠다.

이중 내가 생각하는 으뜸은 정부 주도의 시스템 구축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