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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리뷰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를 읽고 (비참한 삶과 함께하는 지은이의 활약)

잠깐 자서전에 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 자서전은 튼튼한 야생초와 같습니다. 가난한 가정환경, 열악한 조건, 늦은 나이 등의 가난한, 열악한, 최악의 등의 수식어를 붙여야 어울리는 지은이의 고통스런 환경을 이겨내고, 세상에 우뚝 서서 자서전까지 낸 지은이들의 야생초 같은 고생 경험담을 읽어보면 나에게 감정 이입 되어서 두고두고 유익한 간접경험이 되는 것 같습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지은이가 세상의 고통으로부터 신음 받고, 세상의 관심으로부터도 외면 받은 비참한 세계 오지 소수 민족들의 고생을 같이 느끼면서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지은이 자신이 직접 고생길을 자처한 진흙탕 좌충우돌 경험담을 담은 현장감이 살아있는 책입니다.

“비참한 삶의 가감 없는 전달과 월드비전이라는 구호단체의 활약”
말라위라는 아프리카 오지는 생쥐가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라고 합니다. 굶주림을 참다못해 먹는 게 아니라 오래된 간식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굶주림의 현장을 잘 전달하는 것 같습니다. 구호품이 부족해서 극심한 기근에 시달리는 마을 중 그나마 더 심한 마을을 선택해서 한정된 구호품을 전달해야 된다고 합니다. 당시 지은이는 초보 구호요원으로 모두를 도울 수 없음에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고참 구호요원은 구호품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냉정해야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비참한 현장은 끝없이 넓고 깊어서 구호의 손길이 닿을지도 모르는데 그 작은 손길이라도 공평하면서 넓게 펼치고자, 냉정하고 차분하게 구호활동을 펼치는 멋진 구호요원들의 고뇌하는 현장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옆에 폭탄이 터지고 미군들이 죽는 험악한 이라크에서 지은이는 숨막히는 불볕더위 속에서 답답한 방탄조끼를 입고 재건현장을 지휘합니다. 험악한 분위기와 짜증나는 자연환경과 열악한 업무조건 속에서 지은이와 구호단체는 영화 홍반장의 주인공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복잡하게 얽힌 재건현장의 난제들을 해결해 갑니다. 결국 식수가 나오는 해결과정에서 해맑게 웃는 어린이를 보며 지은이는 너무도 행복해 합니다.

시에라리온이란 곳은 군벌들의 전쟁으로 극도로 피폐해진 소년, 소녀들의 현장을 주로 담았습니다. 군벌들이 소년병에게 마약을 먹여서 적이 제대로 살수 없게 손목과 발목을 부지런하게 잘라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도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손목, 발목 잘린 사람들과 그 잔인한 행위에 별다른 죄의식을 못 느끼는 불쌍한 소년병과 낮에는 잡일을 하고 밤에는 군인들의 성 노예가 되었던 불쌍한 소녀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육체적인 상처를 받은 손목, 발목 잘린 사람들과 정신적인 상처를 받은 소년병, 소녀들의 치료활동을 이야기합니다. 전쟁이 발생시키는 무참하게 잔혹한 악마적인 인간의 본성 때문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지은이는 최악의 현장만 다녀서 그런지 이런 지옥 같은 환경을 무덤덤하게 전달 하는 것이 인상 깊었을 정도였습니다.

그 외 지은이와 월드비전의 구호활동은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쓰나미 현장에서도 계속되고 그곳에서도 비참하고 외면 받는 소수민족들의 고통스런 삶의 현장을 가감 없이 전달합니다.

“몸의 고생과는 상관없이 너무도 행복한 지은이”
내 목숨이 위협받고, 40도 불볕더위에 모기가 극성거리고 물이 없어 빨래도 제대로 할 수 없는데다가 더구나 숨막히는 방탄조끼까지 입어야 된다면 우리나라 여름 무더위가 두려워 결국 비싼 에어컨을 구입한 저는 하루도 못 버텼을 겁니다.
지은이는 이런 고생하는 현장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자기도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몸이 극도로 고생하는 상황인데 얼굴 표정이 너무도 행복해 하는 표정이었다는 겁니다.
책에 실린 활짝 웃는 지은이의 사진을 보면서 육체적, 물질적인 행복에 좌우되지 않고 고통 받는 자를 돕는다는 뿌듯함과 자부심에서 저절로 얼굴 표정에서 우러나오는 지은이의 행복은 분명히 강남 비싼 아파트에 살면서 외제차 모는 행복보다도 훨씬 깊고, 안정되고, 평온해 보였습니다.

“누나 같은 친근한 문장과 글쓴자의 힘”
지은이의 문장은 멋진 수사를 쓰는 소설가나 어렵고 멋져 보이는 용어를 쓰는 자기계발 책처럼 꾸미는 문장이 전혀 없을 정도로 담백합니다. 정말 누나가 동생에게 말하는 듯 일상의 언어들만 사용하여 구호현장과 그곳에서 느낀 지은이의 생각을 담백하게 전달합니다.
그런데 이 담백함에서 ‘글쓴자의 힘’을 느꼈습니다. 얼마 전 다른 책 서평에서 저는 ‘글쓴자의 무력함’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글 잘쓰고 말 잘해도 실천을 못하면 허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은이는 원래 실천을 잘했을 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좋아해서 이 책을 써냈고, 그 결과 현실에 찌들어 나만 아는 사람들과 어떤 꿈을 꿔야 될지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진정 보람된 삶의 모습을 알려주었고 고통 받는 소수민족의 현장을 가감 없이 전달하여 소수민족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이 책은 비참한 삶의 가감 없는 전달과 월드비전이라는 구호단체의 활약을 통해 몸의 고생과는 상관없이 너무도 행복한 지은이의 모습을 누나 같은 친근한 문장으로 전달하여 글쓴자의 힘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멋진 자서전 이었습니다.

지은이가 40대에 처음 이 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책을 읽기 전 이룬 것 없이 벌써 30대가 되간다고 투덜거리는 저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이 책을 선물해준 직장동료가 비싼 술 한잔 사준 것 보다 훨씬 고마웠습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푸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