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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연습장

열정은 왜 천상 싱글스레드로만 작동할까.

종이로 썼으면 몇장을 찢었을 일이다. 백수였다가 다시 일을 시작 한 뒤로 일주일에 한번씩은 겨우 블로그에 글쓰기 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 왔다. 그러다가 2주를 건너 띄었다. 이거 큰일났다. 오늘은 꽤 구독자가 솔깃한 글을 쓰고 싶었다. 근데 꿈쩍도 않는 바위를 미는 것처럼 글의 완성을 위한 생각이 작동하질 않는다. 백수생활 4개월동안 최적의 상태로 만들었던 글쓰기 감이 무뎌졌다. 백수생활 특히 책쓰기에 도전하며 다듬었던 이 글쓰기감을 꼭 유지하고 발전시키자고 다짐했지만 나의 게으름에 무뎌진 느낌이다.

이렇게 된 원인은 내가 그동안 꾸준하고도 어렴풋이 느낀 바인데, 사람을 어느 한 분야에 최고로 열심히 몰두하게 만드는 '열정'이란 특급 상태가 오직 한 방향으로만 작동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잠시 나의 경험담을 예로 들어 본다.

내가 정말 무엇인가 너무 좋아서 미쳤던 때는 신입사원 이전에 프로그래밍에 열렬하게 빠졌을때가 거의 처음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때의 열정은 꼭 1년을 갔던 것 같다. 그 뒤로 한 2년간은 아무 열정없이 지낸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일이 아닌 느낌도 들고, 직장 사춘기, 권태기로 투덜투덜 하며 보낸것 같다.

그리고 블로그에 미쳤다. 또 눈감고 생각하니 그때 나의 행동은 지금 내가 생각해도 이해가 안될정도로 눈이 벌겋고 엉덩이가 아플정도로 블로그 글쓰기를 했다. 심지어는 글이 많이 추천 받기 위한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새벽 4시까지 글을 쓰고 발행한적도 있다. 블로그외 다른 분야는 눈에 보이질 않았다. 그런데 블로그도 딱 1년 갔던 것 같다. 지금은 그냥 장수 블로거란 소리만 들어도 성공일 것이다 .

다음은 수영에 미쳤다. 수영은 이 악물고 노력한 운동중에 가장 고생했지만, 가장 크게 성공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수영은 새벽반을 다녔는데, 심지어는 밤을 새는 다음날에도 수영은 반드시 했다. 온갖 수영 동영상과 글을 분석하면서 수영 지식을 쌓았다. 수영한지 1년이 지났다. 이제는 모든 영법도 알고 어느정도 이론도 습득하고 나름의 훈련방법을 터득하다보니 서서히 열정의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은 새벽반 강습에 빠지고 있다.

그리고 백수생활때는 또 책쓰기에 미쳤다. 책쓰기는 블로그하고는 달리 '큰 설계'가 필요하다. 블로깅이 일반 프로그래밍이라면 책쓰기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PM이 되어 그 거대한 프로젝트의 골격을 다듬고, 일정을 잡고, 영업까지 뛰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이 거대한 일에 도전하면서 나는 다시 열정을 가질 수 있었고 그 열정을 책쓰기에 쏟아부었다. 책쓰기에 대한 열정은 일단 책이 출간하는 그때까지 유지되야 했다. 근데 책쓰기 중간에 취직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사실은 책쓰기 때문에 조금 여유있게 일해보려고 SI가 아닌 SM으로 취직했다. 사장님은 칼퇴근 하면서 책쓰기등의 내일을 할수 있을꺼라고 하셨다. 그런데 담당 시스템이 무척 어렵게 느껴졌고, 여러가지 전후 사정이 안 좋아서 매일 늦게까지 일에 매달렸다. 하루종일 일만 생각하다보니 또 내가 열정을 가졌던 책쓰기등이 무뎌지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또 일에 매달리다보니 데이터베이스와 배치쉘등 옛스러운? 프로그래밍 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지금은 출퇴근 시간에 열심히 데이터베이스 공부를 한다. 대신 책쓰기와 블로깅은 저절로 소흘해 졌다.

지금 시점에서 생각하면 다시 내 밥줄인 IT기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것이 천만다행이다. 내가 이 관심을 계속 유지한다면, 나는 오랫동안 IT바닥에서 성공적으로 생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욕심은 이 '관심'과 '열정'을 한 군대에 쏟아부으면 다른 분야는 저절로 소흘해진다는 것이다. 나는 여러곳에 내 관심과 열정을 동시에 쏟아붓고 싶다. 이것은 마치 멀티스레드 방식이다. 일단 지금처럼 IT기술에 대해 평생동안 관심을 쏟아붓고 싶다. 몇년에 한번씩은 책을 내고 싶다. 일주일에 3번은 블로그에 구독자들이 좋아할만한 글을 쓰고 싶다.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고 재미있는 수영을 평생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열정이란 큰 프로세스를 쪼개서 관심이란 작은 쓰레드를 만들면, 멀티 스레드 방식으로 나의 열정을 관리할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럴듯한 생각이다.

결국 나에게서 종종 열정이 발생하는 이유와 그 열정을 잘 관리하고 싶은 이유는, 내가 부족한 것을 절감하며 내 부족한 것들을 넘어서 나도 뭔가 잘 해보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근데 열정이 싱글 스레드로만 작동하는 이유와, 열정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아직 게으르기 때문이다.

오늘 모처럼 글을 써보니 역시 글쓰기는 생각과 고민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효과가 있다. 나의 잠재의식이 모처럼 글쓰기에 대한 효과를 감지했을 것 같다. 그래서 다음주부터는 다시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