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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리뷰

야생초 편지를 읽고 (마음이 환경보다 우선이다.)

군대생활은 군대생활처럼 지루했다. 재귀적으로 무한루프도는 저 비유야 말로 군대생활이 얼마나 지루했는지 완벽하게 표현해주는 비유일 것이다.

나는 저 군대생활 같은 군대생활을 4년을 해야 했는데 3년째 되는 어느날 나는 무더위와 끝없는 사막을 걷는듯한 지루함에 지쳐 심드렁하게 야간 근무를 하고 있었다.

당시 같이 근무하던 독서 좋아하고 활달한 선배님이 왠 누리끼리~한 책을 읽고 있었다. 선배님의 책을 잠깐 읽어보았다. 나는 처음 만났지만 10년 이상을 만난 이끌림을 믿는다. 이 누리끼리~한 책을 한장 읽는 순간 무언가에 이끌려 선배의 책을 뺏고서 야간 근무내내 책읽기에 몰두했다.

야생초 편지는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뉴욕 소재 사회과학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앨리트로써, 한창 열정적으로 사회생활을 할때 간첩 누명을 쓰고 132개월 동안의 감옥생활을 해야 했던 황대권씨가, 자신의 지병을 고치기 위해 야생초에 관심을 갖고 야생초를 가꾸면서 얻은 인생의 성찰을 자신의 동생한테 편지로 기록한 내용들을 모은 책이다.

편지에는 '야생초'와 함께 '무덥다'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감옥의 '지루한 생활''무더움'은 내 군대생활에서 항상 떠오르는 이미지였다. 나는 내 군대생활과 황대권님의 생활을 동일시 했다. 그래서 그분이 친근했다. 오히려 그분이 더 열악했더라도 나름대로 그분의 입장에서 책을 읽었다.

당시는 한창 인터넷 파괴 용어가 뜰때였고, 군대 아저씨들이 말하는 것 역시 고상하지 않았다. 이런 언어에 익숙해진 나에게 야생초편지의 성찰 가득한 문장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성찰 가득한 문장이지만 지나치게 고상하게 꾸민것도 아니고 자상한 오빠의 말투로 편하게 글을 썼다. 그 글에는 누명을 씌우고 닫힌곳에서 생고생을 시키는 세상에 대한 증오는 한문장도 찾아볼수가 없었다. 그 열악한 좁은 공간에서도 지은이는 야생초를 통해 인생의 성찰을 얻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오히려 열악한 감옥이기 때문에 가능한 새심하고 부드러운 세계를 보는 눈과 글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회생활에서는 오히려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같아도 한창 열정이 넘칠 나이때 누명씌우고 13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된다고 한다면 미쳐버리고 13년 내내 증오에 가득찬 세월을 보냈을 것 같다. 그러나 지은이는 나름의 환경을 잘 활용하여 성찰 가득한 13을 보냈고 지금 생태공동체라는 지은의 꿈을 펼쳐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이 책을 읽고 나는 크게 위안을 얻어서, 잊었던 일기 쓰기도 시작하고 어떤 생각이 있으면 글로 써보기도 하는 노력을 시작하였다. “주어진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 그 환경에 대처하는 마음이 문제다” 나름대로 정리하면 당시 이런 진리와 글쓰기의 중요성을 알게되었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무릇 정성과 열심은 무언가 부족한데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만약 내가 온갖 풀이 무성한 수풀 가운데 살고 있는데도 이런 정성과 열심을 낼 수 있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주어진 자연의 혜택을 느긋하게 즐기는 데 시간을 더 쏟았을 것이다. 물론 풍요로운 생활환경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열악한 생활환경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풍요로운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삭막한 교도소에서 만나는 상처투성이 야생초들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 주는 귀중한 '옥중 동지'가 아닐 수 없다”


야생초 편지
황대권 지음/도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