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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리뷰

아버지의 깃발 (주변에서 흔히 볼수 있는 소박한 영웅들)

당시 전철을 타는중 옆에 사람이 보는 신문에 대문짝만한 영화 광고가 눈에 보였다. '아버지의 깃발' 이라는 전쟁 영화였다. 나는 전쟁역사, 특히 최근에는 2차세계대전 역사를 좋아해서 꼭 봐야겠다~ 는 생각을 했다. 무엇보다 이런 종류의 영화는 극장에서 '남자들끼리 봐도 무안해 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다음날 따르는 회사의 형한테 '아버지의 깃발'을 같이 보자고 했지만, 그 형은 영화를 이미 봤다며 영화가 몹시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워낙 오랜만에 나온 2차세계대전 영화라 꼭 보고 싶었다. 결국 영화를 봤고 나는 영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실감나는 전쟁 장면이 그럭저럭 잘 어우러져 재밌게 보았다.

영화 내용은,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중 제일 치열한 이오지마에서 벌어진 해병대 전투중 별 생각없이 고지 정상에 꽃은 성조기를 담은 사진이 기가 막히게 멋지게 나와, 국민들에게 전쟁의 승리를 의미하는, 희망을 주는 상징적인 사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마침 전쟁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던 정부는 국채 발행에,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깃발 사진을 이용하면 크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고 사진의 생존자 3명을 불러 국채 발행 행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생존자중 일부는 단지 평범하게 깃발을 꽃았을 뿐인데 영웅 대접을 받았다는 괴리감과, 자신들만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 했고, 결국 영웅들은 지극히 평범하거나 불운한 삶을 살았고, 이오지마에서 죽은 이름없는 작은 영웅들은 아무 대가도 없이 잊혀져 갔다.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깃발 사진과 깃발을 세운 생존자들이 국민의 희망과 영웅으로 잘 포장했지만, 결국 겉으로 포장된 현실이 드러났듯이, 전쟁의 승리는 한사람의 영웅보다 평범하게 죽은 병사들 하나하나의 공으로서 이루어진 것이며, 깃발 사진 처럼 아무리 잘 꾸며도 전쟁은 결코 미화될 수 없는 잔혹한 현실이다. 라는 것이다."

내 나름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리해봤지만, 진짜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더 심오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다.

영화 구성은,
정말 2차세계대전 이오지마에 있었던 것처럼, 무기와 소품과 병사들의 농담까지 사실적이었으며 전쟁신 또한 라이언일병구하기 처럼 실감났다. 중간 생존자들의 회상이나 생존자들의 미국 순회 장면이 지루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오지마의 전쟁신 보다는 느릿~한 감이 있었다. 스릴러물처럼 잔뜩 긴장하게 되고 줄거리에 몰입하게 되는 그런 구성은 아니었다. 그러나 실감나는 당시 상황의 재현과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잘 어우러졌던 것 같다.

나는 영화를 '생존자 3명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라는 관점에서 한번 더 생각해 보았다.

정부와 매체에 기꺼이 협력하면서 갑자기 영웅이된 현실을 잘 이용하고자 하는 '현실주의 영웅',
    
자기가 진짜 영웅이 아닌것에 죄책감을 느끼며 진정한 영웅은 이오지마에서 죽은 동료들이라고 하는 '바보같이 순수한 영웅',
    
이오지마에서 나름대로 전우를 위해 헌신했으며 별 문제없이 미국 국채 발행 행사를 마치고 나머지 여생도 잘 마친 '평범한 영웅',

이 중 가장 매끄러운 영웅은 주인공의 아버지인 '평범한 영웅' 인것 같다. 무엇보다 위생병으로서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으며, 국채 발행 행사도 개인주의 또는 극도의 죄책감 으로 사로잡힌 주변 영웅에 비하면 무난히 마쳤으며, 나머지 여생도 잘 보내다가 죽었다. 내가 당시에 있었으면 '평범한 영웅' 처럼 되야 한다.

하지만 나라면 아마 '현실주의 영웅' 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평범한 병사에서 갑자기 영웅이 됐다면 주변의 이목 때문에 처음에는 약간 죄책감이 있는것처럼 보일것이다. 하지만 곧 마치 로또에 당첨된것처럼 기쁘게 돌아다니면서 이 행복한 기회를 돈도 벌고 명예도 얻는데 마음껏 활용할 것이다.

아버지의 깃발이 지루한 감이 있다는 얘기가 이렇게 생각해볼게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아버지의 깃발
제임스 브래들리.론 파워스 지음, 이동훈 옮김/황금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