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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수영

수영 자유형 1000미터 가던날의 독백

100미터
내 몸은 먼지다. 온 세상의 저항으로부터 자유로운 먼지와 같은 존재다. 100미터 가는 동안 내몸을 가볍게 하는데 집중했다. 여지껏 해보지 못했던 한참동안을 헤엄쳐야 하므로 몸을 가볍게 하는게 최우선이다.

자유형 하나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동안의 몸상태를 점검했다. 스트로크는 묵직하게, 리커버리는 가볍게, 킥은 묵직한 동력이 되어 작동해야 한다. 스트로크는 최근 물잡기의 감이 생겨서 묵직하였다. 리커버리는 오른팔의 팔꺾기는 가볍게 되지만 왼팔은 아직 힘이 들어간다. 킥은 2킥을 사용했는데 아직 몸이 가라앉는 느낌이 안들어서 다행이다.

50미터에서 턴하고 100미터를 가는데 순간 움찔했다. 고작 100미터 갈뿐인데 왜이렇게 길게 느껴지는겨.. 앞으로의 과정이 까마득한 대장정으로 느껴졌다.

200미터
왼팔, 오른팔 스트로크시 두번의 킥을 차는 2킥을 사용할 경우의 장점은 체력을 엄청나게 비축할수 있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팔힘에 많이 의존하여 장거리 뛰면 팔과 등근육이 많이 피로해지는 것에 있다.

상체 근육을 쉬게 해주기위에 킥을 좀더 차주었다. 200미터 지점에서 나름대로의 페이스조절 및 힘의 균형을 맞춘다고 4킥을 차주었다. 사실 4킥은 하나의 스트로크에 3번, 하나의 스트로크에 1번의 킥을 차주는것으로 알고 있지만 제대로 차고 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다.

4킥을 사용했더니 몸이 좀더 부상하면서 조금 빠르게 가는듯은 했다. 하지만 고작 200미터 도는것이 왜이렇게 많이 돈것 같은지..첫번째 고비가 이때였다. 더구나 200미터에서 턴할때 앞에 사람들이 턴하는 구간을 막아서 잘못하면 이어서 가지 못하고 레이스를 멈출 뻔했다. 그러면 에라 모르겠다 그만하자~ 이럴수도 있다..수영장 기본 예절 중 하나는 턴하는 구간을 막으면 안되는디..

300미터
300미터부터는 좀더 가볍게 스트로크가 되었다. 점점 내 몸이 장거리를 뛴다는 것을 인식하고 몸이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대응해 가는 것 같았다. 이것이 숨이 트인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 숨차서 힘드는 그런 느낌은 없어졌다. 다만 스트로크 동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상체근육이 잘 견딜지 걱정이 되었다.

팔을 뒤로 밀어내는 스트로크를 할때 내 팔에 밀도높게 물의 압력이 전달되면서 팔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 물속에서 음~하며 거품을 낼때 기포는 나에게서 나와 물안경을 가렸다가 물위에서 소멸한다. 숨을 쉴때 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나와 수영장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순간 수영은 고독하게 생각하며 할수있는 운동인것도 매력이라는 생각을 했다. 300미터에서 턴을 하는데 어떤 아저씨가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그래~ 끝까지 도는 모습을 보여주자.

400미터
예전에 억지로 한번 400미터를 돌았더니 상체근육이 마비되고 등근육이 찣어지는 듯한 경험을 하였다. 아마 상체근육의 근력이 부족하고 아직 힘이들어가서 그랬을 것이다. 400미터는 나의 심리적, 신체적인 한계였다.

400미터에서 힘들었던 경험을 아는 내 몸은 움츠려 들고 있었다. 힘이 들어가는것이 느껴졌다. 특히 팔꺾기때 힘이 들어가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 힘을 풀어보려고 애썼다.

다시 2킥에서 4킥으로 상체근육을 도와주었다. 그러나 힘이 들어서 다시 킥의 횟수는 2킥으로 줄어있었다. 400미터가 큰 고비였다. 아마도 과거 나의 심리적, 신체적인 한계였기 때문일 것이다.

500미터
400미터를 넘어섰다. 내몸이 내가 400미터를 충분히 넘어섰다는 것을 알자 다시 몸의 긴장을 푸는것을 느꼈다. 점점 몸이 가벼워지고 스트로크에도 힘이 실린다.

스트로크에 힘이 실리는 그 순간 나는 팔을 기역자로 꺾어서 물을 저어보았는데 물이 새롭게 잡히는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새로운 물잡기의 감이다. 최근 S자 물잡기의 묵직한 감은 얼추 익혔지만 전문 수영선수처럼 팔을 기역자로 꺾어서 확 물을 채는 그런 물잡기는 안해보았는데 얼핏 해보니 묵직한 감이 느껴졌다. 이것이 제대로된 물잡기 감인지는 좀더 확인이 필요할 것이다.

앞에 나이드신 할머니가 느리게 수영을 하셔서 교통정체가 이루어졌다. 느리게 가면서 팔의 스트로크 횟수도 늘어났다. 큰일났다. 스트로크 아껴서 저어야 되는데..할머니를 추월하기 위해 갑자기 속도를 내었다. 겨우 추월하였지만 아직 견딜만 했다. 다행이다.

600미터 턴을 하는데 아까 나를 유심히 보던 아저씨가 또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600미터
레이스의 절반을 넘어섰다. 처음처럼 몸이 가볍지는 않지만 그래도 앞으로 꾸역꾸역 나가고 있다. 좀더 경쾌하게 갔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나아가고 있는 것이 어딘가 싶었다.

역시 앞에 사람이 천천히 배영을 하고 있어서 교통정체가 이루어졌다. 마치 중앙선을 침범하듯 다시 추월하였다. 이번엔 추월하기 힘들었다. 더구나 이번에도 사람들이 턴하는 구간을 막아서 제대로 턴을 할수없었다. 그래도 꾸역꾸역 나아간다.

700미터
700미터가 200미터, 400미터에 이어 3번째 고비였다. 이때쯤이면 후반기인데 앞으로 3바퀴나 남았나 하는 까마득함과 아니..고작 3바퀴남았는데 이쯤에서 그만둬도 별 차이 없지 않나...하는 유혹이 겹쳐져 특히 고비로 느껴졌던 구간이었다.

몸은 무거워지고 그러면 당연히 속도도 느려진다..그래도 꾸역꾸역 가면 언젠가 턴하는 구간이 보인다. 그러고보니 장거리 수영 연습이 턴연습도 저절로 도와주는 것 같다. 턴 하는 동작이 좀더 자연스러워졌다. 지금은 오픈턴 하지만 언젠가는 퀵턴도 멋지게 하리라.

800미터
사람의 몸은 정말 리듬을 타는가보다. 700미터 고비를 넘었더니 몸이 조금은 다시 가벼워진것 같다. 하지만 상체근육중 등근육이 뜨거워지면서 약간 갈라지는 그런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이거 다음날 틀림없이 알배기겠구만~

900미터 턴을 하는데 아까 그 아저씨가 또 나를 유심히 본다. 잘해서 보는건지 팔꺾기 동작이 엉성해서 보는건지..의심스러웠다.

900미터
이제 한바퀴만 돌면 끝이다. 몸이 가볍다. 일부러 킥을 많이줘서 속도를 내보기도 했다. 950미터 턴을 하면서 오히려 속도를 더 내보았는데 속도를 더 내는 힘이 남아있다는게 신기했다. 그래서 경쾌하게 나아간다.

이제 1000미터다..

1000미터
1000미터에서 멈추려다가 한번 더 턴하고 멈추기로 했다. 턴하고 돌핀킥 한번 차주고 멈추었다. 수영장에 서서 내 몸의 상태를 유심히 관찰해보았다. 신기하게 폐는 헐떡이지 않았다. 하지만 등에 묵직한 감이 오면서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얼굴은 약간 달아올랐다. 이정도면 예전에 400미터 돌때보다도 괜찮은 느낌이었다. 이제야 1000미터를 돌았구나. 내년이면 바다수영해도 되겠다 싶었다.


수영은 나도 운동을 하나쯤 잘할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구원의 천사다. 나는 지독한 몸치라 어떠한 운동도 잘하지 못해서 좌절하곤 했다. 수영도 3개월동안이나 물에 못떠서 허우적 거렸다가 겨우 살아났다. 그래도 수영만큼은 노력한만큼 나에게 웃으며 와주었다. 사실은 동영상으로 내 수영 모습을 스스로 보기전에는 믿기 어렵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잘한다고 말해주니 노력한만큼 되는 수영의 모든것에 고마워하고 있다. 이번에 수영 자유형으로 1000미터를 돌면서 느낀 힘듬과 즐거움을 올려보았다.

나의 최종 목표는 ‘무제한 자유형에 400미터 혼영 완주’인데 무제한 자유형보다 400미터 혼영이 훨씬 어렵다. 자유형은 이제 1000미터도 가지만 접영은 달랑 50미터 한번 갔을 뿐이다. 접영을 자유형처럼 편하게 할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을까. 접영 100미터 가면 다시한번 그 독백과 소감을 올려야겠다. 8월이면 수영 배운지 1년 된다. 그전에는 완주해 보리라.
 
[배영의 숨쉬기 편한점이 좋았다가, 평영의 안락함이 좋았다가, 무엇보다 접영의 화려함에 열광했지만 결국엔 자유형만한 형님이 없다.]

산골이 덧1)
제가 자유형으로 1000미터를 완주했던 것에는 2비트 킥, 4비트 킥을 통한 힘의 안배와 팔꺾기에 힘이 빠지면서 가능했습니다. 이 두가지가 아니었으면 못 돌았을 겁니다. 특히 무작정 발장구 차는것보다 2비트 킥이나 4비트 킥 쓰게되면 힘을 엄청나게 비축할수 있었습니다. 참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