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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연습장

블로거 컨퍼런스 후기 (글쓰기의 가능성과 한계)

청나라의 침략에 40여일을 겨우 버티다가 치욕적으로 항복한 병자호란 얘기가 담긴 소설 남한산성을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사람사는 세상의 모든 진흙탕~ 요소를 한권의 책에 모두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남한산성에는 3가지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청나라의 침략에 항복이든 저항이든 어떻하든 해결해보고자 발로 뛰는 ‘실천가’들로 특히 항복을 주장한 최명길은 체면 중시의 양반 관료들에게 모욕을 당하면서 까지 나라를 위해 자신의 체면을 버렸습니다.

다른 하나는, 높은 자리에 가만히 앉아
말과 글로만 청나라를 물리치려고 했던 무능한 관료, 무능한 ‘관찰자’들 입니다. 이들은 말과 글로 청나라를 이겨서 조선의 자존심을 살리자고 ‘에헴~’ 하며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과 글에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말과 글은 나라를 구원하는데 쓰지 않고, 청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 글자들의 배치 문제로 밤새 싸우고는 했습니다. 그들의 말과 글은 바늘로 살짝 만 찔러도 터지는 풍선처럼 허망하게 부풀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무능한 ‘관찰자’들의 실정 때문에 추운 겨울에 손발이 얼어 동상으로 수족이 잘려나간 불쌍한 군인들과 백성들, 바로 우리 서민입니다.


> 글쓰기의 한계

저는 이번 블로거 컨퍼런스을 다녀오면서 ‘이 정도면 괜찮네~’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제가 다녔던 ‘다른 컨퍼런스와 비교 했을 때’ 시설이나 강연, 행사 진행 면에서 무난했다고 보았습니다. 저랑 같이 여러 컨퍼런스 참석했던 후배도 이번 컨퍼런스는 괜찮았다고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제가 좋게 보았던 것은 행사와 강연 진행의 좋고 나쁘고를 떠나 실수 없이 무난하게 행사 진행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 하는 흔적이 느껴져서 좋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정도면 까칠한 블로거들도 좋게 평가하겠구나~싶어서 집에서 후기를 읽는데 고개가 갸우뚱거렸습니다. 비판하는 글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발전을 위한 건전한 비판’이라기 보다는 ‘우월한 관찰자’ 입장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자랑하기 위해 내뱉는 소리 같았습니다.
    
좋은 비판을 한 글들도 있었지만, 일부 후기 비판 글들은 마치 고개 꼿꼿이 새우고 거만한 표정을 지었는데 한편으론 최대한 고귀하고 고상한 척 ‘하인’을 타이르는 ‘귀족’ 같아 보였습니다.

귀족 같이 ‘우월한 관찰자’ 입장에서는 어떠한 소리라도 내뱉을 수 있지만 그 소리의 힘은 바늘로 살짝 만 자극해도 터질 것 같은 ‘풍선’ 같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월한 관찰자’ 입장에서 미흡한 면도 있었지만 행사의 성공을 위해 최대한 ‘노력’ 한 것으로 느껴졌던 관계자들을 자기 마음대로 지지고 볶는다고 하더라도 그 허황된 말과 글의 힘은 자기가 욕하는 ‘고생스런 실천가’에 비해 형편없이 미약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글쓰기의 가능성

실천 없는 글들은 허황된 힘을 쫓고, 허황된 힘에 중독되어 자신의 한계를 인식 하지 못하는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글쓰기의 가능성도 다시 확인 했습니다. 저는 한비야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행동하는 실천가’이기 때문에 존경합니다. 그리고 실천을 바탕으로 ‘글쓰기의 힘’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존경합니다.

“지은이의 문장은 멋진 수사를 쓰는 소설가나 어렵고 멋져 보이는 용어를 쓰는 자기계발 책처럼 꾸미는 문장이 전혀 없을 정도로 담백합니다. 정말 누나가 동생에게 말하는 듯 일상의 언어들만 사용하여 구호현장과 그곳에서 느낀 지은이의 생각을 담백하게 전달합니다.

그런데 이 담백함에서 ‘글쓴자의 힘’을 느꼈습니다. 얼마 전 다른 책 서평에서 저는 ‘글쓴자의 무력함’을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글 잘쓰고 말 잘해도 실천을 못하면 허황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은이는 원래 실천을 잘했을 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좋아해서 이 책을 써냈고, 그 결과 현실에 찌들어 나만 아는 사람들과 어떤 꿈을 꿔야 될지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진정 보람된 삶의 모습을 알려주었고 고통 받는 소수민족의 현장을 가감 없이 전달하여 소수민족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합니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를 읽고 (비참한 삶과 함께하는 지은이의 활약) 리뷰 일부분

예전에 아직 나만 알고 부자 나라만 알았던 내가,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 어려운 나라에 희미하게라도~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책으로 전파되는 글쓰기의 힘을 느꼈습니다.

블로거 컨퍼런스에 한비야님 강의를 들으니 행동하는 실천가의 소탈한 글처럼 소탈한 강의가 멋있었고, ‘이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라는 물음은 일반 자기계발책에서 읽었으면 고리타분~ 하게 넘겼을 것인데, 한비야님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한 강의를 들으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한비야님외 몇분의 강의를 들으며 저는 글쓰기의 힘을 어떻게 키워야 되는지 다짐하였고, 블로거 컨퍼런스의 일부 후기를 보며 내가 무엇을 경계해야 되는지 되새겨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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