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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객체지향의 탄생(2013)

객체지향의 탄생-필리핀해 해전에서 배우는 연구 개발의 중요성

 

  1. 필리핀 해전에서 배우는 연구 개발의 중요성

1942년 6월의 미드웨이 해전은 전쟁의 균형추를 미국에 기울이게 한 의미있는 사건이었다. 마치 눈에 보이는 기능에만 신경쓰고 눈에 보이지 않는 품질은 신경쓰지 않는 우리나라 IT 환경처럼, 과거 미일간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의 공격일변도 기능 중시 사상 때문에 항모의 안전을 무시, 일본 항모 4척이 쉽게 침몰당하는 대패를 일본이 겪은 이후 전쟁의 방향은 미국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2년 후 1944년 6월에 벌어진 필리핀 해 해전은 일본의 항공력과 해군력이 회복 불능으로 피해를 입어 일본해군의 등뼈(back bone)를 부러트린 전투로 불린다.

 

일본은 미드웨이 해전 이후 지속적인 항공력 해군력이 소모되는 가운데서도 미국과 한판 결전을 벌이기 위해 항공력을 포함한 강력한 함대 재건에 노력한다. 2년 후 일본은 겉으로 볼때는 전쟁 초기 잘나갔을 때의 함대를 재건한다.

 

일본의 문제는 숙련된 조종사의 부족에 있었다. 1941년 진주만 기습 때만 해도 일본에는 숙련된 조종사가 풍부 했다.

 

1942년 미드웨이 해전부터 시작하여 지속적인 항공 소모전으로 일본의 항공기가 계속 꾸준히 표현 그대로 '털리고' 있었다. 문제는 항공기의 손실보다는 숙련된 조종사가 계속 전사했다는 것이다. 숙련된 조종사는 단시간에 대체하기가 어려웠다. 고급스럽고 비싼 30년산 와인을 1년만에 만들수 없는것과 같다.

 

일본은 조종사의 부재는 어쩔수 없더라도 일단 항공모함을 포함한 위엄있는 함대를 재건했다. 다시 미국과 한판 대결을 노렸다.

 

당시 미국은 태평양의 일본의 영향력을 점점 축소시키고 있었다. 한때 호주까지 위협할정도로 태평양의 많은 영역을 일본이 차지 했다.

 

그러나 미드웨이 해전 이후 일본의 태평양 전선은 계속 축소되었고, 곧 사이판까지 위협받게 되었다. 만약 사이판까지 미국에 탈환당하면 일본은 자신의 본토가 위협받고 동남아의 자신의 식민지로부터 원료 수송이 위협받게 되었다. 일본은 사이판을 꼭 사수해야 했고 미국 해병대를 지원하는 해군 함대를 격멸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이 겨우 재건한 함대를 이끌고 사이판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미군은 잠수함을 통해 일본이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사이판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알았다. 미 함대도 일본함대를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전투 당시 일본 해군과 해군 함대의 진로]

 

일본이 먼저 당시 일본의 주력 전투기 '제로기'를 포함한 대규모 비행기를 발진시킨다. 그리고 미 해군도 당시 미군의 주력기 '헬켓'을 포함한 대규모 비행기를 발진시킨다. 그리고 그들 비행기들은 곧 필리핀 해에서 조우한다. 치열한 공중전이 펼쳐졌다.

 

결과는 미군은 30대의 함재기 손실, 일본은 무려 400여대의 손실을 입었다. 미군이 기관총을 쏘면 일본은 마치 '원샷 라이터' 처럼 불이 붙어 '파리'가 추락하듯 무참히 추락했다. 어쩌다가 이런 말도 안되는 일방적인 전투가 되었을까.

 

미 해군 조종사들은 이날의 전투를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이라 불렀다. 칠면조는 닭보다 4배는 크고 움직임이 느려 잡기 쉽다고 한다. 일본의 전투기 사냥은 칠면조 사냥처럼 쉬웠다.

 

바다에서도 일본은 미군 잠수함이 쏜 어뢰에 항공 모함 2대가 침몰되는 초대형 피해를 입었다. 미 해군 함선은 한척의 피해도 입지 않았다.

 

일본은 패배를 인정하고 일본 본토로 물러났다. 이날 이후 일본은 다시는 함대함공력을 재건할수 없고 재해권을 거의 잃었다. 그래서 필리핀 해 해전을 일본의 등뼈를 부러트린 전투라고 부른다.

 

이날 해전(사실 해전이라기 보다는 공중전)에서 일본이 일방적인 피해를 입은 이유는 무엇을까. 잘나가던 일본은 미군의 열배 이상의 일방적인 '학살'을 경험했다.

 

미군 전투기가 더 많은것도 원인이다. 전투기가 어느 한편이 더 많을수록 더 이길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랭카스터 법칙)

 

숙련된 조종사 부족도 원인이다. 미군의 베테랑 조종사들은 루키 일본 조종사들을 마음대로 비웃으며 사냥했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전투기 성능에서 차이가 컸다는 것이다.

 

진주만 공습작전 때만 해도 일본의 주력 전투기 '제로기'는 당시 최고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미군의 전투기는 제로기의 날렵함과 장거리 항속 능력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러나 미군은 빠른 속도로 개선된 전투기를 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1944년에 현장 배치된 '헬켓' 이란 전투기는 제로기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했다. 이후 일본 제로기는 '원샷 라이터' 처럼 한방 맞으면 불덩어리가 되어 추락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1941년 제로기 이후 주력 전투기를 하나도 내놓지 못했다. 오직 제로기뿐이다. (1945년 신형 전투기를 개발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미군은 1941년 진주만 공습 피해 이후 공백은 있었지만 곧 주력 전투기를 열심히 내 놓는다. 최초 와일드캣(제로기 보다 성능이 좋지 않음) 이후 커세어, 헬켓, 머스탱 등의 3기가 현장 배치 후 일본 제로기를 표현 그대로 탈탈 털기 시작한다.

 

 

이 과거 전쟁사에서 우리는 하나를 배울 수 있다. 연구개발의 중요성이다. 지금 당장은 최고의 기술력이라고 하더라도 계속 꾸준히 연구 개발을 하지 않으면 얕잡아 보았던 경쟁사의 최신 무기 앞에 위력을 잃을 수 있다.

 

SI로 돈을 버는 것을 전쟁터에서 일하는 전방이라고 한다면 후방에서 꾸준히 연구 개발을 하여 SI팀에게 최신 무기를 보급해주는 연구 개발력도 중요하다.

 

연구 개발은 미드웨이 해전에서 종이 조각처럼 약한 일본 항모 처럼 되지 않기 위해 내부 코드 품질을 생각하여 잘 개발해야 한다.

 

그래서 시대를 앞서가는 기술력 확보를 위해서는 연구 개발이 필요하고 연구 개발에는 객체지향을 통한 유연하고 확장하기 쉬운 코드 품질을 높여주는 개발이 필요하다.

 

덧 ) 이 객체지향의 탄생 원고는 제가 책으로 내려다가 일단 잘 안되었는데요. 이유는 비문이 많다. 단락내 주제가 중복된다. 어떤 상황 설명을 과장한다.등 입니다. 그래도 원고를 일단 블로그에 몽땅 풀어보고 언젠가 제대로 교정해서 다시 도전할 생각입니다. 이점을 감안해서 읽고 객체지향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의견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원고 조금만 교정하면 괜찮을것 같은 출판사 관계자분의 피드백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