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짧게 쓰기/연습장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설은 것과의 적응 중

5년내내 같은 팀원들과 일하다가, 회사 그만두고 백수생활을 몇달 한것이며, 이번에 새로운 곳으로의 첫 출근을, 나는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고 표현한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은 구본형님의 유명한 자기계발 책 제목과 같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표현은 나도 이런 급격한 환경 변화를 통해 뭔가 발돋움 해보려고 했다는 일종의 자기 합리화와 비슷하다.

4달동안의 백수생활 끝에 다시 회사 출근 했을때, 나는 생활리듬하고 코딩감각 되살리는데 꽤 시간이 걸릴줄 알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생활리듬은 내가 백수 생활 습관을 일정하게 유지했기 때문에 금새 적응되었고, 코딩감각도 금방 적응이 되었다. 사실 코딩감각도 글쓰기 감각처럼 적응하는데 꽤 걸릴줄 알았는데 금새 적응되는것이 꽤 의아했다. 생각해보니 매일 글쓰기 라는 얘기는 무수히 많이 나와도 매일 코딩 습관이라는 말은 들어보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제대로 걸렸다. 이번에 내가 하는 일이 하필 내가 꺼려하고 약한 부분만 잘해야 한다. 나는 업무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 분야에 상대적으로 약하다. 이번 일터에서는 내가 약한 이 두가지가 내가 할일의 거의 전부였다.

이 사실부터 출발하여 새로운 일터에서는 나를 긴장하게 만든 건수가 여러개 존재했다. 이번에 나는 프리랜서로 취직했기 때문에 바로 '프로' 다운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전임자가 꽤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를 보는 눈이 저놈 잘할려나..라는 눈빛으로 예리하게 번뜩이는 것 같다. 여기서는 형님..동생같은 잔정을 기대하기는 일단 힘들 것 같다. 왠지 서늘한 분위기.. 그리고 그 많은 업무내용과 기술내용에 대하여 3일만 인수인계 받았다. 그리고 바로 실전투입을 했다. 코딩은 금방 적응하고 작업 하겠는데, 업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쿼리분석하기가 쉽지않았다. 그럼에도 결과물은 바로 보여줘야 했다.

그리고 내가 급하게 취직한 이유는 난생 처음 대출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럴일은 없겠지만 만의 하나 잘못되면 안되기 때문에, 나는 기필코 이곳에 잘 정착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컸다. 그래서 저번 일주일은 매일 늦게까지 야근하며 적응하는데 애를 썼다.

근데 주말에 쉬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저런 사실들로 인하여 너무 긴장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좀더 여유를 갖고 차근차근 적응해야 겠다. 차라리 잘되기도 했다. 이번에 내가 약한 업무분석이나 데이터베이스를 확실히 파고들면, 어느 프로젝트 가도 당당하게 적응할수 있는 기회가 생긴것도 같다.

내가 일하는 곳은 명동 모 은행이다. 명동은 하필 5년전 근처 모 은행에서 신입으로 처음 프로젝트 했던 곳이기도 하다. 퇴근할때 5년전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공교롭게도 5년전이나 지금의 나는 상당히 비슷한 상황이다. 그때의 나는 무조건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냥 무작정 열심히 했던 신입이었다. 지금의 나도 역시 무조건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경력에 맞게 여유있게 일해야 하지만, 신입처럼 열심히 일하고 있다.

신입때의 나는 나홀로 그곳에 파견나가서 처음부터 인정받아야 했기 때문에 늘 외로워 했다. 어린나이에 겪는 외로움은 꽤 커서 나중에는 정을 쫓아 회사를 옮기기도 했다. 지금의 나도 나홀로 그곳에 파견나가서 완전히 처음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일하는 환경은 비슷해도 나 자신은 많이 달라졌다. 신입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틀린것은 경력과 돈이다. 세월의 풍파속에 경력을 쌓으며 혹시 있을 외로움과 기타 힘든일은 무시할만 하다. 사실 이렇게 무시할만한건 대부분 돈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적어도 일할만큼은 받을것 같다.

요즘 나는 진정한 용병, 진정한 프로가 된 느낌이다. 프로는 오로지 실력으로 말하고 돈으로 보상받는다. 예전에 나는 누군가로부터 기술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호를 받는 아마추어 였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보호자의 뒤에 숨어서 어려운 상황을 피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친환경에서도 오로지 실력으로 이겨내고 적당한 돈으로 보상받는, 프로의 길를 걷기 시작했다. 나는 익숙한 아마추어와 결별하고 낯설고 거친 프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