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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연습장

우리집 기왓장에 갇힌 길고양이 새끼 유인 작전

우리동네는 길고양이가 많습니다. 그래서 왠만한 고양이 울음소리는 고양이가 우나보다~ 하고 넘어가요. 처음 새끼 고양이가 울때도 새끼가 엄마 찾나보다~ 하고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이 새끼 고양이는 전혀 멈출 기색도 없이 하루종일 우는 겁니다. 그래도 저는 남 코고는 소리나 동물 울음소리에 둔감한 편이라 그럭저럭 참을만 했습니다. 근데 다른 동네 주민은 많이 짜증이 났나 봅니다.

고양이는 둘째날에도 계속 울었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린것 같습니다. 근데 새끼가 엄마 없이도 꿋꿋하고 씩씩하게 짖어대는 모습이 참 대단하구나~ 하며 고양이의 생명력에 감탄했어요. 하지만 지금 새끼 고양이 칭찬할때가 아닙니다.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 짜증이 납니다. 바로 그때 걸걸하고 거친 목소리를 가진 아저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아저씨 : "야 이놈아. 조용이 안해 이 놈아..도대체 누가 키우는거야..잠을 못자겠잖아..누구 키우는 놈 있으면 가만 안둘줄 알아..조용이 해..이놈 저놈..어쩌고..."

저 소리에 우리 주민은 바짝 쫄았어요. 오히려 저 아저씨가 더 소음이더군요. 근데 정작 당사자인 새끼 고양이는 전혀 쫄지도 않고 둘째날 밤에도 쉬지도 않고 용감하게~ 울었습니다.


고양이: "..삐옹..삐옹..곱하기 하루종일..(새끼 고양이는 삐옹 하며 우는것 같았음)"

그리고 사흘째, 새끼 고양이가 이제는 좀 지쳤는지 띄엄 띄엄 울어요. 그래도 주기적으로 계속 웁니다. 동네 주민들 약이 바짝 오른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떤 놈이야...잡히기만 해봐.." 하며 씩씩거리는 소리가 웅성웅성 들립니다. 그런데 사흘째 내가 창문을 활짝 열고 누워서 쉬고 있는데 어느 여자가 나를 부르는 겁니다.


여자 : "아저씨..아저씨.."
산골이 : "예? 저요..? (아고 깜짝이야 밖에서 내 방이 보인단 말이야...)"
여자 : "예..아저씨 도대체 어디서 누가 우는거에요?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겠어요.."

그래서 나가보니 읍..그 여자..아가씨 였는데..그 아가씨가 어찌나 짜증났던지 속옷바람으로 뛰쳐나와 고양이 소리의 진원지를 찾던중 저를 부른겁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속옷바람으로 나와서 총각한테 말거는거야 으흐~ 라고 속으로 생각했어요.


산골이 : "아 글쎄..저어~쪽 집에서 소리나는것 같아요..여긴 아닌것 같아요."

하고 다시 집에 들어와서 골똘히 생각했습니다. 이거 이렇게 두면 안되겠는데..오죽 했으면 아가씨가 속옷차림으로 나왔을까 흠냐~ 꼭 잡아야 겠는데..이러다가 동네 주민들 폭발하겠는데.. 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회사에 출근하신 엄니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엄니 : "그 고양이 아직도 울어? 오늘 아침 자세히 보니깐 우리집 지붕 기왓장 안에 있는 것 같아..자세히 보고 119 전화해봐.."
산골이 : "아 그래요? 저쪽집에서 나는것 같았는데..알았어요~"

[나중에 찍은 사진으로 저기 즈음에서 새끼 고양이가 얼굴 내밀고 울고 있었다.]


하고 바깥에 나와 자세히 들어보니 정말 기왓장안에서 소리가 들리는 거에요. 그리고 자세히 기왓장의 구멍을 들려다 보니 헉...새끼 고양이가 고개를 내밀고 울고 있는 거에요. 이상하다 저쪽 집에서 울리는 같았는데..좌우지간 있는 곳은 발견했으니 저 놈을 꺼내야 되는데 꺼낼 길이 마땅치 않은 거에요. 기왓장을 들어낼수도 없고 말이죠. 그래서 일단 119에 전화를 했습니다.


산골이 : "저 바쁘신데 죄송하지만..새끼 고양이 울음소리 때문에 동네주민들이 3일동안 신경질이 나있는 상태여서 도와주십사.."
119 : "아 그러세요..그러시면 시청 고양이 수거 센터로 연락하시길 바랍니다...전화번호가..."

얘기를 듣고 보니 길 고양이를 전문적으로 수거하고 구출하는 팀을 시청에서 따로 운영하는것 같습니다. 그곳에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얼마뒤 고양이 구조 전문 아저씨 두분이 오셨어요. 근데 그분들도 기왓장안에 고양이는 자기들도 방법이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다가 흐지부지 되어 그분들은 가셨어요.


근데 그때 같은곳에 사는 아저씨 한분이 올라오셔서 새끼 고양이 있는 곳을 알았으니 우리가 한번 저 고양이를 꺼내보자라고 했습니다.

아저씨가 옥상에 올라가 막대기로 기왓장을 톡톡 치며, "나비야..거기 위험해 바깥으로 나와.." 하며 고양이를 자극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저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라고 지켜보았는데 글쎄 새끼 고양이 소리가 조금씩 움직이는 거에요.

[1지점에 새끼고양이가 있었고, 아저씨가 나무로 툭툭 치면서
새끼 고양이를 2지점까지 움직이게 하였다. 하지만 새끼 고양이는 2지점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목표는 3지점까지 유인하기 였다.]


하지만 새끼 고양이는 저 위치에서 더이상 움직이진 않았습니다. 여전히 구슬프게 울고요. 어디 좋은 방법 없을까요. 아하~ 먹을것~! 저는 아저씨한테 먹을것을 저 구멍에 갔다대면 고양이가 나오지 않을까라고 말했어요. 아저씨는 잠깐 기다려봐 하시더니.. 돼지고기 덩어리를 몇개 가져와서 저 구멍에 놓았습니다.

아저씨 : "나비야..고기 먹으러 온나..."

정말 올까요? 라며 의심하는데 앗~ 앙증맞게 작은 고양이가 그 작은 얼굴을 구망 바깥으로 들이미는 겁니다.


[그렇게 나오라고 소리질러도 안나오더니 고기 넣어주니깐 나오려고 한다.]

우리는 놀라기도 하고 기분도 좋아서 숨죽이며 지켜보았습니다.






결국 새끼 고양이가 부들부들 떨며 아슬아슬한 발걸음으로 기어나와 고깃 덩어리를 먹네요. 야호~ 드디어 3일간 동네 주민을 불쾌지수 100으로 몰고간 용감한~! 주범이 잡힌겁니다.





근데 아저씨랑 나랑 문득 드는 생각..

산골이 : "근데 저놈을 어떻하죠"
아저씨 : "소리 때문에 키웠다가는 주민들이 가만 있겄어..고양이 구조 아저씨들한테 연락해야지.."

그래서 구조 아저씨들한테 고양이를 넘겨주었어요.


그런데 사실은 슬픈 소식입니다. 사실 이 포스팅 제목을 '우리집 기왓장에 갇힌 길고양이 새끼를 구출하다~'로 멋지게 지을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어요. 왜냐면 길 고양이를 수거해가면 '안락사'를 하기 때문입니다. 저 어리고 불쌍한 새끼는 안락사가 된다고 합니다. 저 고양이 수거할때 안락사 어쩌고 하면서..서류에 사인까지 받더라고요.

하지만 저 새끼 고양이를 키우기는 어려웠고요. 뭐랄까..냉정한 안쓰러움만이 속으로 울렸을 뿐입니다. 미안하다. 나비야..

이 사건을 통해 배운것은요.
1. 고양이는 워낙 생명력이 강해서 새끼 고양이도 보살핌 없이도 한달동안이나 산다고 합니다. 새끼가 3일동안이나 울어서 대단하다고 했더니 구조 아저씨들이 어휴~ 저놈들은 새끼도 그냥 한달은 사는 놈들이에요~ 하시더군요.
2.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 길 고양이 구조 전문가 아저씨도 포기한 작업을 저랑 같이 작업한 아저씨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새끼 고양이를 밖으로 유도하더군요. 세상에 안되는건 없다라는 것을 다시한번 교훈삼았습니다.
3. 길 고양이 때문에 고생하면 시청이나 구청에 연락하면 처리하는 팀이 따로 있는것 같습니다. 참고하세요. 단 구조/포획된 고양이는 안락사 될수도 있습니다. 흠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