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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연습장

설날에 만난 수도사 사촌형

설날은 따뜻하다. 내가 느끼는 설날 이미지가 따뜻하다~ 로 통일되는 것은 추운 나에게 큰 행복이다.

설날에 친척집에 가는 데 날씨는 추웠다. 그러나 통일된 이미지는 따뜻하다. 늘어지게 자서 따뜻하고, 기름진 설날 음식 먹어서 따뜻하다. 할머니, 외숙모, 사촌형 만나 덕담 들으니 따뜻하고, 요즘에는 통통한 볼살이 따뜻해 보이는 아기 조카들과 어울리니 따뜻하다.

따뜻함을 느끼며 큰집으로 갔다. 큰집에는 뜻밖의 반가운 손님, 수도사 생활하는 사촌형이 와 있었다. 3년만에 보는 사촌형이다.

사촌형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몇 년전 나에게 수도사 생활 TV 다큐맨터리를 보여주더니, ‘나도 곧 여기로 간다’고 하였다.

TV로 봤던 수도사 생활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생활이었다. 현대인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쾌락과 혜택을 무시하고 금욕을 해야 하는 수도사 생활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더구나 ‘무전 여행’ 이라고 하는 ‘돈 없이 목적지까지 열흘 정도 가는 여행’등의 수련 과정은 군대 훈련 보다도 힘들어 보였다.

아무나 할 수 없는 길을 선택한 사촌형은 드러나지는 않지만 많이 변해 있었다. 그렇게 동안이었던 사촌형은 어느덧 나이 들어 보였고 일부러 웃는 표정도 아니었지만, 표정만큼은 은은하게 평온해 보였다.

행동도 변했다. 예전에는 무뚝뚝했는데 설날에 만난 사촌형은 나를 많이 챙겨주었다. 친절 대장이었다. 내가 행동 하나하나 할때마다 유심히 보고 불편한데 없는지 나를 챙겨주었다. 그리고 그 모습 역시 은은하게 자연스러웠다.

감동이다. 은은한 평온함과 은은한 친절, 오랜 수행 끝에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표현하기 힘든 은은함, 나는 현대인의 혜택을 포기한 사촌형이 답답해 보이기도 했지만 사촌형은 내가 이루지 못한 사촌형만의 아름다운 영역을 완성해 가고 있었다.

나는 사촌형을 만나기 전에 아기 조카의 통통한 볼살과 해맑은 표정에서 따뜻함과 맑음을 느꼈다. 그런데 사촌형의 모습에서 아기 조카에게 느꼈던 따뜻함과 맑음을 다시 느꼈다.

나는 춥다고 썼다. 내가 춥다는 것은 욕심이 많다는 것이다. 욕심이 많은데 욕심을 따라잡을 능력과 실천이 부족하기 때문에 나는 춥다고 썼다.

그래도 나의 욕심은 물질적 욕심이라기 보다는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 하는 욕심이기 때문에 나는 추위를 느낄만 하다라고 위로하기도 한다.

그러나 따뜻하고 맑은 아기 조카와 비슷한 수도사 사촌형의 모습에서, 욕심만 추구하는 나를 정지시키고 사촌형에게서 배울점을 생각해 보았다.

사촌형과 내가 서로 가는 길은 틀리지만 언제나 따뜻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