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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리뷰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를 읽고 (무서운 열정)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옆자리의 직장 동료는 출퇴근 전철시간을 독서하며 보낸다. 당시 동료는 무척 눈에 띄고, 화려한 색감을 가진 ‘반고흐, 영혼의 편지’ 를 읽고 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야생초 편지'와 비슷한 편지체의 문장들과 책에 실린 반고흐의 수 많은 화려한 그림들이 예술에 문외한인 나에게 왠지 교양인의 길을 열어줄 것 같아서 바로 책을 구입했다.

반고흐가 평생 동안 동생 테오한테 보낸 편지들은 편지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너무도 강렬하여 특정 강렬한 이미지들을 계속 떠오르게 한다. 이 문장들은 번역된 문장들 일 것이더라도, 반고흐의 험한 절벽처럼 격정적인 성격과, 깊은 땅굴처럼 너무 깊게 파고 들어간 반고흐의 고뇌와, 그렇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생각해 볼만한 멋진 글들이 무척 강렬하게 와닿았다.

“질주하는 스포츠카, 성난 파도, 반고흐의 화려하고 울퉁불퉁한 질감의 그림”
뻥 뚫린 도로를 위험한 속도로 질주하는 스포츠카와 큰 배도 사정없이 휘감아버리는 성난 파도와 반고흐의 화려하고 울퉁불퉁한 질감이 살아있는 그림을 생각한다면 이 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일단 이 책이 읽히는 속도가 질주하는 스포츠카였고 성난 파도처럼 나를 휘감았고 반고흐의 그림처럼 강렬하게 읽혔다. 출퇴근 때 각각 40분씩 책을 읽을 수 있는데 이 책을 하루만 에 다 읽었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퇴근 때 전철에 내려서 집에 바로 가지 않고 밴치에 앉아서 책을 마저 다 읽었다. 반고흐의 격정적인 삶과 편지들이 나 또한 격정적으로 책에 빠져들게 하여 끝장을 봐야 되는 스포츠카처럼 한번 읽으면 끝장을 봐야 되는 그런 책이었다.

반고흐의 삶이 위험하게 질주하는 스포츠카였고, 끝없이 몰아치는 성난파도 였고, 반고흐의 그림처럼 울퉁불퉁 거칠었다.

반고흐의 삶은 아무리 좋게 봐줄려고 해도 정상적이지가 않다. 반고흐는 금방 싫증을 낸다. 직장 화랑의 수습사원 이었다가 종교에 빠져서 전도사가 되었다가 결국 그림을 그리게 되지만 말년에는 뜬금없이 외인부대에 들어가겠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여러 예술가 그룹을 떠돌아 다닌다. 반고흐가 현대의 직장인이었다면 결코 받아줄 수 없는 직장인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완벽한 이상을 추구하며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떠날려고 하는데 누가 좋아할 것 인가.

반고흐의 일상 생활이 정상적이지 않다. 두어명의 여자에게 구애하다가 거절당한 후 알코올 중독자 에다가 매독환자인 창녀 시엔과 같이 살게 된다. 이 일 때문에 반고흐는 테오를 제외한 가족과의 사이도 멀어진다. 위대한 반고흐라고 봐주지 말고 바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과연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더구나 반고흐는 끝까지 시엔과 같이 산 것도 아니고 나중에 시엔을 버리기까지 한다. 한 여자를 지독히 사랑하는 일관성도 없다. 그리고 일시적인지 계속인지 모르겠지만 화가들과 어울리며 과음과 퇴폐적인 생활을 했고 그래서 건강이 악화됐다고 한다. 위대한 반고흐라고 봐주지 말고 이것도 있는 그대로 생각해 보자. 건강이 악화된 이유 또한 자업자득 아닌가.

반고흐는 일생 동안 신경과민에 시달렸다. 끝 모를 죄책감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나오지 않는 땅에서 석유를 파내기 위해 끝없이 땅굴을 파는 것처럼 지나치게 자신의 삶과 주변 요소를 지독하게 고민한 것 같다. 신경과민, 죄책감, 무력감에 시달리는 중간에 자신의 귀를 자른다. 결국에는 권총으로 자살을 하고 만다. 이것도 위대한 반고흐라고 이해할 수 있는 그의 삶 인가.

“그럼에도 위의 격정적인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와 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한가지 때문이다”
반고흐의 삶은 정상적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반고흐와 그의 그림은 널리 알려졌고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 또한 그의 거친 삶이 거북하게 와 닿았더라도 이것 하나 때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반고흐의 정상적이지 않는 삶을 덮어줄 수 있는 요소는 오직 ‘무서운 열정’ 단 한가지 때문이다.

직장과 주변 환경과 사람에 끝없이 싫증을 내고 끝없이 신경과민과 무력감과 죄책감에 시달렸더라도 반고흐는 그림과 삶에 대한 ‘무서운 열정’ 만큼은 변함이 없었고, 그 ‘무서운 열정’이 늦게 시작한 그림이었지만 그를 위대한 화가로 추앙 받게 만들었다.

책에는 삶과 그림에 대한 ‘무서운 열정’과 관련된 멋진 글들이 있고, 서평에 반고흐의 격정적인 글들을 언급하였기 때문에 그 글들을 직접 인용하고 싶지만 내가 격정적으로 빨리 읽어서 그런지 도무지 인용할 만한 글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다만 오직 ‘무서운 열정’만이 강렬하게 남을 뿐이다. 이 책에서 얻은 것은 ‘무서운 열정'이 다른 온갖 좋지 않은 요소를 덮어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물감이라는 것이다.

왜 성공서적과 자서전의 저자들과 회사의 CEO들이 ‘열정’을 최우선 덕목으로 뽑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만한 책이었다. 나도 그냥 ‘열정’ 도 아닌 ‘무서운 열정’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 봐야겠다 라는 자극을 주었다.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예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