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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칼럼

기획자를 알다.

두달여 동안 짧은 프로젝트를 했습니다. 짧지만 두툼한 느티나무처럼 굵은 프로젝트를 한것 같습니다. 밀도높고 빡씨게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가지 느낀점도 많이 생겼습니다. 이번에 좀 쉴때 몇가지 생각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기획자에 대한 얘기 입니다. 저는 기획자란 직군을 오랫동안 알지 못했습니다. 개발자가 있고 디자이너가 있고 PL이 있고 대장인 PM이 있었죠. 제 기억에 PPT로 스토리보드 짜는 기획은 개발자 선배가 했던것 같습니다.

기획자를 제대로 만난적은 작년 가을 웹프로젝트 였습니다. 기획자 두분이 현업과 계속 회의를 반복 하면서 PPT를 작성하고 결국 해당 화면과 기능을 어떻게 구현할지 확정짓더군요.

저는 그때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기획자가 중간에서 현업의 요구사항을 잘 정리하여 PPT로 만들면, 개발자는 일관성 있게 개발할수 있겠구나~ 우리 개발자들은 중간에 이런 일들을 많이 겪잖아요. 갑이 그동안 개발한 결과물을 엎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획자가 현업과 치열한 회의를 통해 기획을 했고, 그것이 PPT란 결과물로 나왔다면 현업도 자기가 요구한것이 무엇인지 더 이해할 것입니다. 그 요구사항이 잘 정리됐는지 PPT로 확인도 할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PPT란 확실한 결과물이 있기 때문에 현업도 함부로 요구사항을 뒤집지는 못할것 입니다.

저는 기획자가 있으면 유익한 이유로 이것을 더 꼽고 싶습니다. 기획자들은 바로 개발자가 갖기 힘든 '사용자 관점'에서 프로젝트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사용성은 좋은데 개발하기 힘든 A란 기능이 있고, 사용성은 나쁜데 개발하기 좋은 B란 기능이 있다면, 개발자는 아무리 사용자 관점에서 생각하더라도 일정에 치이고 야근에 치이다보니, 저절로 사용성은 나쁘지만 개발하기 좋은 B란 기능을 구현하고 싶어집니다. 개발자가 아무리 사용자 관점에서 생각을 하고 싶어도 일에 치이다보면 개발 생산성을 우선 생각한다는 것이죠.

근데 기획자가 있으면 개발자 관점과 사용자 관점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바로 이런 기획자의 유익함을 이번 어플 개발 프로젝트에서 경험했습니다.

기획을 모바일 전문 업체에게 맡겼습니다. 어플 전문 업체답게 탄탄한 기획이 나왔습니다. 저는 기획만 보고 일관성있게 개발하면 되더군요. 갑이 중간에서 기능을 엎는일은 없습니다. 탄탄한 기획안을 보고 저는 앞만 보고 달리면 되었습니다.

중간에 일정 압박 때문에 제가 사용성을 조금 포기하고 개발 생산성을 더 달라~ 라고 주장하면 기획자는 그 중간 접점을 찾아 유연한 대책을 제시하곤 했습니다.

덕분에 좌충우돌 고생했지만 프로젝트가 잘 끝날것 같습니다.

기획이란 분야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진 않아서, 아무나 할수도 있을것 같지만, 그만큼 훌륭한 기획자를 찾기가 힘들것 같고, 일종의 창조를 해야하기 때문에 나름 어려운 직업 같습니다.

기획이란 요소가 두루뭉실하기도 하여 웹기획자가 모바일기획도 충분히 할수 있을것 같지만, 이번 모바일 전문 회사의 기획력을 보고 모바일 전문 기획자의 기획이 일반 기획자의 기획보다 어떻게 틀린지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시스템이나 내부 프로젝트가 아닌, '고객'을 중요시 하는 프로젝트라면 꼭 기획자가 있어야 하고, 이왕이면 전문분야의 기획자를 쓰는 것이 돈이 더 드는것 같지만, 결국 비용 절감하면서 '고객'을 만족시키는 훌륭한 프로젝트를 이끌어 낸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습니다.

(만약 제가 나중에 또 개인어플을 개발한다면 그때는 '기획자'도 꼭 끌어들이기로 했습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