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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리뷰

김훈, 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을 읽고

이순신 장군보다 차라리 진돗개 보리가 되보는게 좋겠다. 이 책을 덮고 드는 생각이다. 칼의노래와 개:가난한 내발바닥의 기록의 공통점은 1인칭 시점에서 일기 쓰듯 쓰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차이점이라면 하나는 만인이 우러러 보는 거대한 존재이고 하나는 보잘것 없는 개라는 존재이다.

그래도 진돗개 보리의 일기장을 읽고 사람보다 낳은 보리의 뚜렷한 주관과 애틋한 헌신을 보면서 너무 거대한 장군님보다는 차라리 가끔 보리가 되어 보는것이 그럴듯하다고 보았다.
 
 “내 이름은 보리, 진돗개 수놈이다. 태어나보니, 나는 개였고 수놈이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기는 소나 닭이나 물고기나 사람도 다 마찬가지다.”
보리가 엄마로부터 태어날 때를 회상하면서 일기장은 시작되는데, 회상하는 말투가 다정한 오빠가 동생한테 말하듯 꽤나 의젓하게 말한다. 그 신기하고 어이없는 모습부터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데 TV 프로그램에서 어린 아이들이 어른 노래 와 춤을 흉내내면 그 앙증맞은 모습을 보고 웃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다만 나는 오히려 보리가 조금 더 어른스럽고 의젓해 보였다.

 “새 주인집으로 가는 자동차 안에서 발바닥을 핥아보니 내 발바닥 굳은살은 훌륭했다. 물에 잠긴 고향의 산과 들을 뛰어다니면서 단단해진 굳은살이었고, 그 굳은살은 지금은 물에 잠겨 사라진 고향의 땅이 나에게 가져다준 가장 값진 선물이었다.”
보리는 댐에 물이 차면 곧 사라지는 가난한 촌에서 태어났고 댐에 물이 차서 마을이 사라지자 가난한 어부를 주인으로 삼게 된다. 보리는 이 가난하지만 소박한 민초의 모습을 의젓하면서도 세밀하게 묘사한다.
보리가 보았던 인간의 세상은 촌이라는 가난하고 소박한 세상뿐이었으므로 보리는 도시의 부유하고 거대한 세상을 알지 못했다. 보리는 자신이 자랑하는 발바닥으로 가난하고 소박한 세상만을 신나게 뛰어다녔을 뿐이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보리가 뚜렷한 주관과 소박한 정신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아이들 중에서도 내 주인집 딸 영희의 모습은 놀랍게도 아름다웠다.”
 "흰순이는 하얀 암캐였다. 새끼를 한 번도 낳지 않은, 젊은 암놈이었다. 허리는 잘록했고 뒷다리는 가늘고 날씬했다…눈은 크고 맑아서 속이 들여다보일 듯했다.”
 "어둡고 사나운 냄새였다. 치가 떨리고 피가 솟구치는 수컷의 냄새였다. 입 안이 시꺼멓고 뒷다리가 늘씬한, 사나운 수컷의 모습이 내 마음에 떠올랐다..악돌이었다.”
 "뱀이 나타나면 아이들은 기겁을 하고 오도 가도 못했다. 나는 앞으로 뛰쳐나가서 뱀을 쫓았다..애써 일군 밭을 망치는 쥐를 덮쳐서 깨물었다...악돌이가 아이들을 위협하자 나는 악돌이를 유인해서 달아남으로써 아이들의 길을 겨우 열어줄 수가 있었다.”
개의 세계에서도 사람과 똑 같은 세계가 있었다. 그것은 사랑과 선과 악이었다.
보리가 우러러보는 주인집 딸 영희, 보리는 아름다운 영희를 찬양한다. 그것은 내가 옛날에 어여쁜 교생선생님을 우러러보았던 것과 똑같이 절대 이룰 수 없는 애틋함 이다.
흰순이는 보리가 자신이 사랑인지 아직 모르는 미지의 감정을 내 보이는 암컷 개다. 보리는 그것이 사랑인지 모르는 듯 했다. 그냥 애틋할 뿐이다. 결국 흰순이는 보리가 사는 마을 최고의 악당 악돌이의 개들을 낳게 된다.
악돌이는 인간세계에서 흔히 보는 몹쓸 악당이다. 자신이 해야 될 의무는 하지 않고 논밭을 망치고 가축을 해하고 아이들과 노약자를 위협하면서 덩치 좋거나 돈 많아 보이는 높은 인간들에게는 꼬리를 살랑 흔드는 천하의 몹쓸 개였다.
보리는 보이지 않게 세상에 기여하는 선한 존재이다. 뱀과 쥐를 쫓고 악돌이와 싸워 아이들을 지켜내는 소박하지만 꼭 있어야 되는 우리의 소중한 존재였다.
개의 세계에서도 변함없는 선과 악과 사랑의 세계, 나는 이 삶의 요소가 모든 세상 구석 구석에 존재 한다는 것이 몹시 신기했다.

“신바람은 개의 몸의 바탕이고 눈치는 개의 마음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겠어”
“지나간 날들은 개를 사로잡지 못하고 개는 닥쳐올 날들의 추위와 배고픔을 근심하지 않는다.”
“나는 되도록이면 싸우거나 달려들지 않고, 짖어서 쫓아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짖는 소리에는 위엄과 울림이 있어야 한다..소리는 깊게 울리고 넓게 퍼지면서 무시무시한 겁을 주어야 한다."
보리의 일기장에는 진돗개 보리만의 뚜렷한 주관과 올곧은 정신을 말한다. 사물과 사람과 자신과 먹이 등의 자기 눈에 보이는 세상의 모든 요소에 대해 보리는 나름대로 뚜렷한 주관을 확보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굳은 발바닥으로 자신이 다닐 수 있는 세상을 달리고 또 달려서 얻은 보리만의 갚진 경험이고 지식이었다.

그럼 나만의 굳은 발바닥은 무엇일까 그 중 하나가 책일 것이다. 내가 읽은 책은 내가 알 수 없고 다닐 수 없는 세계의 지식을 알게 해주는 나만의 굳은 발바닥이다. 나는 내가 읽은 이 책에서 얻은 갚진 문장 하나를 쓰면서 또 하나의 ‘가난한 내 발바닥의 기록’을 마치고자 한다.

 “나는 정말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은 내가 달을 밟을 수 없는 것과 같았다.
내가 사람의 아름다움에 흘려 있을 때도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모르고 있었다.”


김훈 지음/푸른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