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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인터넷 뱅킹 탄생 비화

인터넷이 대중화 된지 얼마나 됐다고 인터넷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면 끔찍하다. 나 같은 경우 오히려 TV 없이는 살아도 인터넷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우리생활 깊숙히 함께 하는 인터넷 서비스 중에 특히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서비스 하나는 무엇일까. 인터넷 뱅킹이다. 인터넷을 쓴다는 의미중에는 자연스럽게 인터넷 뱅킹도 함께하게 되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하게 인터넷 뱅킹을 쓰기 때문에 그 편리함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지만 만약 인터넷 뱅킹을 하지 못한다면 그 불편함은 땡볕에 근처 은행 걸어가서 대기 번호표 뽑고 몇분 기다려 보면 금방 절감할 것이다. 인터넷이 어느 매체보다도 빠르게 대중화 되었던 것은 인터넷이 어느 매체보다도 우리 생활에 편리함을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고, 그중에는 우리 생활에 꼭 필요한 금융거래를 도와주는 인터넷 뱅킹이 기여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호기심 많은 네티즌이라면 마치 열혈 게임팬이 그 게임의 탄생비화를 궁금해 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최초의 인터넷 뱅킹은 누가 만들었을까? 인터넷 뱅킹은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라고 궁금해 할지 모른다. 마치 열혈 게임팬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게임 전문가 이야기 꾼처럼 오늘 인터넷 뱅킹의 탄생비화를 공개한다.


국내 최초의 인터넷 뱅킹은 95년도에 KT의 어느 연구원의 구상에 의해 시작되었다. 지금은 USB기반의 전자 지갑, 포켓 뱅킹을 개발하는 ㈜퍼스트 포켓 사장 이며, 당시 KT 정보통신 관련 연구원이었던 김춘길씨는 95년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네..그때가 한국통신(지금은 KT)에서 일하던 95년 이었습니다. 정보통신 관련 연구직으로 근무한 덕분에 다른 일반인보다 먼저 인터넷을 접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인터넷을 연구하다보니 이게 새로운 페러다임을 만들 '물건' 이더라고요. 그래서 이걸로 남들보다 먼저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뱅킹'을 인터넷에 얹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이전부터 가장 보수적인 산업인 ‘뱅킹’을 인터넷에 얹어 보자는 생각은 기상천외하며 파괴적인 사고로 IT 역사를 좌지우지한 미국의 IT 거장들 못지 않게 혁신적이다.

인터넷이 대중화도 되지 않았는데 가장 민감하고 위험한 돈 거래를 인터넷으로 해보겠다? 더구나 가장 보수적인 집단 은행을 상대로 사업을 해보겠다? 당시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힘들뿐더러 이 생각을 실현하기 까지 엄청난 난관이 예상된다. 아니나 다를까. 김춘길 사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죠. 인터넷에 대한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니, 그 사람들에게 인터넷 뱅킹을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었겠냐”며 김춘길 사장은 힘들었던 옛날을 회상한다. 일단 KT부터 설득하기로 했습니다. 96년에 겨우 연구비를 받아내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죠. 은행도 설득 끝에 개발 첫해인 96년에 14개, 이듬해인 97년에는 15개 은행과 제휴를 맺었습니다. 여기까진 괜찮았죠. 그런데 금융을 담당하는 재경부가 인터넷 금융거래를 믿지 못하겠다며 보안성 검토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무려 몇 년 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99년 5월 금융 감독원 보안성 검토를 얻어 냈고, 그해 7월부터 신한은행을 필두로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국내 최초의 인터넷뱅킹 서비스가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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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당시 개발한 최초의 인터넷 뱅킹 첫화면,
지금은 사라진 서울은행 화면으로
옛날 느낌이 물씬 풍기는 디자인이다.]


역시 보수적인 은행과 정부를 설득하고 개발하기 까지 많은 난관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덧붙여 김춘길 사장은 당시 개발중에 겪었던 우여곡절 재미있는 일화 하나도 소개했다.

KT에서 인터넷 뱅킹 사업에 확신감을 갖고 이를 은행권에 소개하러 다니던 시절인 95년 말, 김춘길 사장은 국민은행 행장과 임원, 전자금융 부서장과 실무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국민은행 본점에서 인터넷 뱅킹 시연회를 가졌다.

그런데 5대의 PC를 연결해 놓고 인터넷 뱅킹 시연회를 하려는 순간 4대의 PC가 다운돼 버리는 가슴 철렁이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인터넷 뱅킹 사업의 사운이 달려있는 시연회때 왠 날벼락인가. “눈앞이 캄캄했죠. 그나마 불행중 다행으로 마침 행장님이 앉아있던 PC가 유일하게 다운되지 않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행장님의 PC가 작동한 덕분에 김춘길 사장은 대형 은행의 시연회를 그나마 무사히 마치게 되었고 이후 인터넷 뱅킹 안정화에 더욱 더 주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95년 당시의 사회 관습, 금융 관습을
깨는 김춘길 한국통신 연구원의 아이디어로 출발한 인터넷 뱅킹은 우여곡절끝에 97년 재경부가 보안성 승인을 하지 않아 일단 모뎀 뱅킹 서비스로 출발하였고, 99년 드디어 금융감독원이 승인함에 따라 본격적으로 인터넷 뱅킹 서비스를 하면서 그 편리함 덕분에 빠르게 전 은행과 전 은행 고객으로 퍼지게 되었고, 지금의 대중화된 인터넷 뱅킹에 이르게 되었다.

이번에 '국내 최초의 인터넷 뱅킹 탄생 비화'를 조사하면서 느낀 것은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기술은 세상을 저만치 앞서나가는 기상천외하고 파괴적이며 혁신적인 사고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95년 당시 누가 인터넷이란 보이지 않는 통신 수단으로 금융 거래를 할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가장 보수적인 은행과 정부를 누가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을까.

세상을 앞서나가는 혁신적인 사고와 꾸준한 실천력, 그리고 꼭 해내겠다는 열정은 미국 IT 거장들의 성공신화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 덧, 당시 인터넷 뱅킹을 최초로 개발했던 김춘길 사장과 당시 팀원들이 뭉쳐서 새로운 개념의 뱅킹인 포켓 뱅킹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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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인 성과로 이 포스팅은 일간스포츠에도 실렸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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