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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쓰기/리뷰

김훈, 자전거 여행을 읽고 (글맛에 취해보자)

어느날 나에게 가장 시시한 것 중 하나는 동갑내기 친구들과 가볍게 맥주 한잔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 상황이야말로 거품 빠진 맥주 마시는 상황이고, 비오는 날 막걸리 없이 파전 먹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동갑내기 친구들과 만나면 소주를 마셔야 된다. 쓰디쓴 소주를 마시며 동갑내기 친구들과 어설픈 세상살이 덕분에 실컷 상처받은 얘기를 하다 보면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쓰고 아프게 자리잡은 상처가 독한 소주와 함께 잠시나마 씻어 내려가는 듯 싶었다.

동갑내기 친구들과 세상살이에 찌든 얘기를 하다 보면 어느덧 시시한 아저씨가 되어버린 너와 나를 보며 우리는 서로 씁쓸해 하며 웃지만 서로를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있었다.

30이 되기 전 올해는 이런 쓰디쓴 술자리가 많았다. 쓰다고 하지만 나는 이런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술자리가 종종 생각난다.

술을 마시고 싶은데 마시지 못하는 날은, 나는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 수필을 소리내어 읽는다.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을 소리내어 읽다보면 나는 어느덧 감칠맛 나는 글맛에 취해 아늑하고 평온하면서 쓰디쓴 기분에 젖어든다.

김훈 작가는 전 재산을 털어 여행 경비와 튼튼한 자전거 하나를 마련하여 우리나라 산과 바다와 도시와 시골 구석 구석을 돌아다녔다.

50이 넘어 체력이 약해진 나이에, 그리고 금전적인 부담이 크게 다가올 나이에 김훈 작가는 보통 사람이 하지 못할 실천을 했다.

자전거 여행처럼 어려운 실천이야 말로 쳇바퀴처럼 굴러가면서 절대 빠져 나오지 못할 정체된 일상을 탈출하기 위하여 망치로 도자기를 깨는 파격적인 혁신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보았다.

이런 파격적인 혁신을 실천하지 않더라도 김훈 작가는 내가 볼 때 글솜씨가 타고난 천재 작가다. 그러나 김훈 작가가 자신의 서재에만 갇힌채 하루종일 글만 썼다면 그래도 여전히 글은 멋있었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답답함이 느껴졌을 것이다.

무대가 탁트인 자전거 여행의 김훈 작가의 글은 그렇지 않다. 조용하고 아늑한데 그 속에 시원함과 통쾌함이 있다.  

산을 묘사할때는 산의 웅장함을 느끼고, 강을 묘사할때는 강의 포근함을 느끼고, 도시를 묘사할때는 냉철함을 느끼고, 사람을 묘사할때는 사람의 정을 느낀다.

글쟁이로서 내가 느낀 그대로를 온전히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궁극의 경지일 것인데 김훈 작가의 자전거 여행을 읽다 보면 나는 궁극의 경지에 오른 글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김훈 작가가 실천하기 어려운 중년의 나이에 멋진 혁신을 실천했기 때문도 있고, 내가 김훈 작가의 문장을 특히 좋아하기 때문도 있다.

김훈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나는 김훈 작가처럼 궁극의 글을 쓰기 위해 오늘도 블로그에 글을 썼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나도 파격적인 혁신을 실천해봐야겠다.

파격적인 혁신을 하더라도 아마 자전거 여행 소리내어 읽기는 계속 될 것 같다.

나는 글맛에 취하고 싶다.

자전거 여행 - 10점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생각의나무

자전거 여행 2 - 10점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생각의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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